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
  • 광양뉴스
  • 승인 2015.10.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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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현 <한국해비타트전남동부지회 사무국장>

  임금의 옛말은 이사금이다. 신라의 유리왕과 탈해왕이 서로 왕위를 사양하다가 떡을 깨물어 잇자욱에 따라 이가 많은 사람이 왕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가 많은 사람, 즉 연장자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옛사람들의 생각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설화다. 예전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혜로워진다는 뜻이고 이치를 판단함에 있어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젊지 않다는 뜻의‘점잖다’는 품격이 속되지 않고 고상하다는 뜻으로 통용되었다.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만들었다는‘어린이’의 뜻도 알고 보면‘나이가 어려 어리석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나이란 사람의 품격을 완성하고 사리를 분별하며 자연의 순리를 알고 능히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혜를 갖는 것에 대한 대단히 유용하고 큰 기준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러한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많다는 것은 노쇠하고 분별력이 없고 고집스러우며 벽창호와 같은 고리타분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당연시 되던‘존중’이 사라진지 오래다.

  왜 그럴까?

  근대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세상사의 변화라는 것은 크지 않았다. 어떤 논조나 유파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백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사시사철에 따라 이뤄지는 농사라는 것도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따라서 경험은 이치를 판단함에 있어 절대적인 것이었다. 같은 일을 수십년 반복해온 나이 많은 어른은 그래서 존경받을 수 있었고 내일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정보사회에 들어서서 사회의 변화는 무지막지해졌다. 무엇을 예측하고 분석할 틈도 없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세계를 하나의 품속에 넣은 자본주의 시장은 매일처럼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이젠 과거의 경험만으로‘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의 경험과 오래된 지식이 존중받던 시대에서 새로운 것과 창의성이 시대의 사조가 되었다. 아니 창의성과 상상력은 이 시대를 지탱하고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생존의 법칙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은 축적되는 것만으로 존중받거나 유의미한 것이 되지 못한다.“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을 당신이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미래를 결정한다”『오늘. 행복을 쓰다』(김정민, 2015)

  상상력의 시대에서 과거의 경험이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있다는 이 글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백세시대라 일컫는 현대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성스럽고 지혜로움으로 이어지기 위한 해법이 여기에 있다. 이어령의 서재와 도올의 강단이 한 예라 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에게 멀어지는 것은‘새로움’이다. 새로움은 낯선 것이고 낯선 것이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령과 안전제일주의에 능통해준 경험주의자들은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못마땅하기도 하다.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이지도 못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그 모든 것에 대해‘나이탓’만 하려한다.

  그러나 구순을 바라보는 이어령의 서재에는 젊은이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칠순을 코앞에 둔 김용옥은 강단에 서기 위해 한의학사가 되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에게 나이란 고집스러움의 대명사가 아니라 명철함과 변화되는 세상을 끌어안는 능수능란함이다. 백세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존엄한 인간으로 세상의 뒷방이 아니라 있어야할 자리에서 존중받는 법!

  그것은 나이를 앞세운 고집스러움이 아니라 변화속에 능동적인 경험자가 되어야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젊은 세대를 마땅찮게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그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는 너그러움이다.

  이 땅의 많은 나이 드신분들에게 스스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아름다워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기를 위해 과거의 경험속에 천착하려는 마음을 추슬러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허리를 곧게 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