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나는 읍내가 참 좋다
<삶의 향기> 나는 읍내가 참 좋다
  • 광양뉴스
  • 승인 2015.12.18 21:00
  • 호수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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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광 광양학연구소 위원ㆍ하조나라 대표

 

 “아까 어떤 분이 계산 하셨는데요 ?”읍내 식당 카운터에서 음식값을 내려하자 여직원이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잠시 머릿속이 멍해진다.

누굴까?

곰곰 생각해보니 자리에 앉기 전에 잠시 눈인사를 나누었던 신촌골 친구가 떠올랐다. 평소 형님, 형님하며 기분 좋게 나를 대해주던, 분명 그였으리라.

참 사람도…

먼저 간다고 인사까지 하더니…

나는 아직도 이웃마을에는 서울에서 살던 낮선 사람, 산촌과 어울리기에는 조금 어색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먼저 다가와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산 속에 여러 해 살다보니 산촌 사람들의 마음이 참 자연을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산이라는 커다란 믿음 때문일까? 그들은 세상살이에 뒤처진 듯 하지만 실은 당당하고 정직하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려는 듯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러한 선한 마음이 내가 아는 마을 사람들의 참모습이기도하다.

내가 사는 산마을 가까운 곳에는 읍내가 있다. 산이 그러하듯 읍내란 곳도 나에겐 매우 친숙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작지만 정겹고 허술하지만 따뜻함이 배어있는 읍내는 여느 큰 도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산 속 찬바람을 맞다가 가끔 읍내의 골목길을 걸어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곤 한다.

옛 읍성이 있었던 자리, 낡은 기와집과 색 바랜 흙담, 쪽방이 있던 자리를 향해 골목길이 미로처럼 사방으로 휘돌아 있다.

그곳에는 가난했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과 치열했던 삶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가끔 그 시대를 상상하며 역사 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길을 가운데로 나란히 서있는 읍내의 작은 건물에는 작은 가게들이 얼굴을 맞대듯 나란히 서있다.

약국 옆으로 철물점, 옷가게, 화장품 가게, 문구점이 늘어서 있고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심히 서있다. 비록 건물이 오래되고 허름하기도 하지만 벽모서리에 걸린 낡은 간판들 속에 감추어진 옛이야기들이 신파조처럼 흘러나올 법하다. 그들은 큰 도시의 높은 빌딩처럼 결코 위압적이지 않고 단순 소박하다. 그런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면 복잡한 마음이 비워지는 듯해서 주변이 아늑해진다.

산 속에 지내다가도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세상이 궁금해지고 비에 젖는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허전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흔쾌히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읍내에 있어서 좋다. 그들과 함께 추산골 두부마을에서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기울 일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술을 즐기는 아우는 비오는 날을 스스로 국경일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비가 오면 집짓는 일을 쉬어야 하기에 그는 맑은 날에도 때때로 비를 기다리곤 한다. 저녁 밥상에서 집사람이 내일은 장날이라고 알려준다.

잠잠하던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장날의 풍경이 다가서고 내 마음이 설렌다. 산과 바다에서 또 인근 도시에서 살아있는 소식을 전하듯 다가오는 채소와 과일, 생선들이 싱싱하게 손짓한다. 좁은 좌판 사이로 여유롭게 물 흐르듯 흘러 다니는 사람들의 행복한 시선도 들어온다.

장날이면 옛날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읍내에 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기에 고심해야 한다.

읍내 우산공원을 오르는 길목에는 지나간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주는 문예회관도 있다. 그곳에서 수시로 열리는 음악회가 나의 발길을 잡고 풍성한 전시회가 내 눈을 끌어당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곡을 배우며 합창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하모니에 감동받아 감성이 충만해지는 문화원이 있는 곳, 그곳이 내 자랑처럼 반가운 읍내이기도 하다.

읍내에서 산 속으로 돌아오는 길.

이따금씩 지나치는 작은 마을들이 그리움처럼 남아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자식들이 천리 객지로 떠나버리고 쓸쓸히 남아있는 집들이 인간의 태초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그들을 품에 안고 있는 푸른 산을 바라보면 산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이며 사람들의 온전한 생각과 정신을 지켜주는 보고가 아닐까?

나는 지금도 내주위에 튼튼한 나무들로 꽉 채워진 산이 있다는 것이 몹시 자랑스럽다. 그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은 자연이기에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매일 신선한 선물을 누리고 산다. 자연이 오랜 세월동안 부지런히 정제한 바람, 햇빛, 물,

사랑스런 읍내를 곁에 두고 사는 일,­이처럼 귀한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