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지역구도. 희망 보인 4.13
망국적 지역구도. 희망 보인 4.13
  • 광양뉴스
  • 승인 2016.04.15 21:04
  • 호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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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전남상담소 소장
김영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전남상담소 소장

독선과 불통 무소불휘의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민을 우습게 여겼던 권력에게 이번 선거는 16년 만에 여소야대라는 정계재편으로 국민은 확실한 경고를 했다.

 또한 50여 년 동안 망국적인 지역구도의 패착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반세기동안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서 오로지 당선을 위해 교묘하게 최대한 지역정서를 자극하여 영남은 보수 수구꼴통으로 호남은 진보 빨갱이로 재단하는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사실영남 지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을 합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야당세가 더 강한지역 이였다.

일제 때 항일투사들이 가장 많은 곳도 영남지역 이였고 해방정국에는 청년운동이 가장 활발했으며 1946년 발생한 10월 항쟁은 당시 노동자와 농민계층이 일으킨 대도시민중항쟁으로 대구가 유일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1960년 2월 28일 계속된 자유당정권의 정치행사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경북고등 8개 학교 고등학생들이 야당의 집회에 참가할 것을 우려한 자유당정권이 일요등교를 강요하자 거리로 뛰쳐와 자유·정의의 구호를 외쳤던 사건과 마산상고 김주열학생의 사망사건과 자유당정권의 3.15부정선거(개표 중 득표율이 너무 높아 하향조정까지 함)가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4.19 의거로 승화하여 이승만정권의 종말을 가져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곳도 영남지역이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런 재판으로 기록된 1974년 민청학련배후로 지목된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 8명 또한 모두가 대구경북인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현대사에서 영남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야당세가 강한 도시였다.

5.16군사정변으로 임기 1년도 안되었던 5대 국회(영남 민주당 57, 무소속 18석, 호남은 민주 46, 무소속 9)때는 오히려 야당의 독무대였고 이후 군사정부인 6,7대 공화당정권이 싹쓸이를 했지만 양당체제인 8대는 영남에서 공화당 27, 신민당 24(호남 공화 21, 신민 13)의 균형감이 있었고 이후 1985년 평민당이 호남 36석을 싹쓸이 했을 때도 영남에서는 민정당 38석에 야당의석을 29석이나 당선시켜 주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제2의 지역구도패착이라면 첫 번째 지역구도는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신민당 대통령후보인 김대중이 40대기수론을 앞세워 영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폭발적인 방향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공화당과 보수언론들은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을 유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지역주의 망령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효상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된다”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를 안 찍는 사람은 미친 사람”(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정선동문구)등의 선동선전문구

선거결과는 김대중이 호남에서 약50만, 서울에서 약30만 표가 앞섰고, 박정희는 영남에서 약150만 표가 앞서고 여타지역에선 대등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94만 표차로 당선된 박정희는 군인60만 표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 이전 선거에서 광주전남은 박정희 52%와 윤보선에게 50%를 주었다.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박정희는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1972년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제정하게 되고 김대중은 박정희의 최대의 정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김대중은 생사를 넘나들다 생존하여 호남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호남을 앞세우기보다 동진정책으로 지역패착을 허문다며 노력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이와 같이 박정희와 김대중, 김영삼 등장 이전 영호남선거에서 지역대결구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5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선거판은 지금처럼 세대 간 지역 간도 아닌 여촌야도(輿村野都)가 대세였다. 공무원과 동네이장이 선거에 동원되고 촌로들은 무조건 이들의 말 한마디에 표를 주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세 사람이 뿌려놓은 흉물을 후배들이 악용하여 지역과 이념 논쟁으로 뿌리내려 선거 때만 되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번 선거에서도 영남은 진박 아니면 배신자이고 호남은 서로 내가 죽은 자의 적통이라고 난리였다.
주권과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삼권이 분립된 나라의 대통령이 책상을 내리치며 국민과 국회를 아래 것들처럼 대해도 찍소리 한번 하지 못했던 19대 국회였다.

그런데도 뽑아만 주면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50여 년 전에도 그랬듯이 먹고살기에도 바쁜 민초들은 이념도 지역감정도 필요 없다.

그런 점에서 영남에서는 보수꼴통 호남에서는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좌빨에 동의하면서 오로지 금뺏지만을 목표로 하는 수많은 위선자들 사이에서 이정현, 정운천, 김부겸, 김영춘의원 등의 당선은 금뺏지를 넘어 망국적인 지역 구도를 허무는데 한줄기 희망의 빛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