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화장실을 아십니까?’ 처마 끝에 둥지 튼 제비 위한 70대 노모의 생명 존중
‘제비 화장실을 아십니까?’ 처마 끝에 둥지 튼 제비 위한 70대 노모의 생명 존중
  • 김보라
  • 승인 2016.06.17 21:57
  • 호수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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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거나 쓰레기 버리지 말아 주세요” 지봉옥 씨
제비화장실을 설치한 지봉옥 씨

진상면 신시길을 지나다 보면 인도 한복판에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가까이서 보면 ‘제비 화장실’이라고 적힌 이 종이 상자에는 정말 제비의 배설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종이상자를 설치한 주인공은 지봉옥(78·경란이 할머니)씨.

지봉옥씨는 집 처마 빗물받이에 둥지를 튼 제비들을 위해 이 같은 ‘제비 화장실’을 설치했다. 지 씨는“둥지 밑이 바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인데 거기에 똥이 떨어지니까 매번 청소하기도 힘들고 보기가 싫어 제비 둥지 바로 아래 박스를 가져다 놨다”고 말했다.


제비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벌써 2년째, 지 씨는 작년에도 꼭 이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고 전했다. 제비는 3월쯤 1-2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왔다 갔다하며 둥지를 만들었다. 여기서 알을 낳고 품어 부화가 되면 새끼들을 어느 정도 키워 9월 달에 날아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둥지 안에는 수 마리의 새끼들이 해거름쯤 모이를 물고 오는 부모 제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지봉옥씨 가족들은 배고픔에 어미를 기다리며 울부짖는 제비들이 안쓰러워 좁쌀을 건네기도 했다. 살아있는 벌레를 먹이로 삼는 제비의 습성을 모른 채 행한 가족들의 배려였다. 필자가 취재하러 간 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연습’이라도 떠난 건지 제비 둥지는 텅 비어있었다.

둥지 바로 밑에 놓여진 제비화장실

지봉옥 씨는 현재 둥지를 튼 제비들이 작년에 왔던 제비거나, 그의 후손들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지 씨는 “작년에 무사히, 편안하게 머물며 새끼 낳고 키워 안전하게 날아갔는데 이를 기억하고 꼭 그 자리에 또 왔다”면서 “짐승들이 오는 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려는 징조, 이들은 아무데나 터를 잡지 않아, (우리집의) 기운이 상서롭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제비 화장실을 만들고 치우는 일이 번거롭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 씨는 “귀찮다고 생각하면 제비 둥지를 없애야 하는데,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하느냐”면서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하면 다 없애버리고 하는데,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과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꾸짖었다.

지봉옥 씨 집 처마빗물받이에 지어진 제비둥지

지봉옥 씨는 마지막으로 “제비 화장실이라고 써 놓으니 다들 조심히 피해가기는 하는데, 인도에 설치해 놓은 거라 발로 차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 씨의 바람대로 제비들이 편안하게 지내며 무사히 새끼들과 함께 남쪽나라로 떠났다 내년 이 맘 때쯤 다시한번 찾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