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정신건강이 위험하다
남겨진 자의 정신건강이 위험하다
  • 광양뉴스
  • 승인 2016.07.01 20:54
  • 호수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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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안전보건공단 전남동부지사 산업안전부장
김규완 안전보건공단 전남동부지사 산업안전부장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동료를 목격한 28세의 근로자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등 현장업무를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된 근로자, 숲가꾸기 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뢰 폭발로 인해 동료의 사망 순간을 목격한 근로자, 맨홀 사고현장에서 본인만 살았다는 이유로 퇴직당하고 유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근로자 등이 사고현장이 자꾸 떠올라 주위 산만, 수면장애, 의욕저하 등으로 요양 중에 있다. 심지어는 환풍기 붕괴사고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모 페스티벌 주최 측 실무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의한 것으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 충격적 또는 두려운 사건을 당하거나 목격한 후 발생하는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위험을 피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신체의 정상적인 신체의 반응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는 그런 외상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이 떠오르고, 그 외상을 떠오르게 하는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된다. 또한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집중을 하지 못해 수면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상실할 것 같은 공포감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게 된다.

산업현장에서는 누구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 산업재해, 자연재해 등의 많은 충격적인 사건(외상 trauma)을 경험하거나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근로자는 즉시가 아니더라도 사고 이후 몇 년 또는 몇십년 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지난해 전남 동부지역(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산업현장 10개소에서 추락사고 등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올해에도 벌써 10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원인조사가 완료되었다. 대부분 대기업 협력사에서 발생되었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이 관심은 사망자에 맞추어져 있다. 세월호 사고 등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고를 중심으로 주변인에 대한 관리(심리상담, 정신과 치료 등)가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산업현장에서 동료를 한순간의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사망자보다 더 많은 남겨진 자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무관심이 서두와 같이 제2, 제3의 산업재해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마음속에 깊숙이 파고든 정신적 충격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치명적일 수 있기에, 사망재해 발생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심이 각별히 필요한 실정이다. 대기업의 경우는 자체 인력 또는 전문가를 활용하여 관리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망자가 소속되었던 중소규모 협력사에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근로자건강센터’가 있다.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지원으로, 참여형 건강증진 기반 조성을 위한 통합적인 산업안전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건강센터로, 전국에 20개소가 운영 중이다.

우리지역에는 전남동부 근로자건강센터(www.jdwhc.or.kr)가 있다. 이곳에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인간공학기사, 물리치료사, 임상심리사, 운동처방사, 운동지도사 등 직업건강 관련 전문가들이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상주하면서, 근로자 직업병 등 건강(질병)에 대한 모든 상담을 무료로 제공한다. 특히, 전문의, 산업전문간호사 및 심리상담사로 구성된 전문 상담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는 근로자들을 위해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사고 후, 사업주는 근로자들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는 근로자들이 있다면,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 조절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한, 인내를 가져야 한다. 일반 상처보다 정신적 외상으로부터 치유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근로자 건강관리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시기이다. 근로자 자신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하고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근로자의 건강을 지켜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노동력 확보가 가정의 행복을 지키고, 나아가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