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어서 슬프다는 절규, 외면해서는 안 된다
농민이어서 슬프다는 절규, 외면해서는 안 된다
  • 광양뉴스
  • 승인 2016.07.15 21:51
  • 호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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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재)나주시 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망막하다. 이제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꽃 농사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애들 학교도 보냈다. 이젠 김영란법 시행으로 꽃 농사도 짓지 못할 것 같다. 나이 50에 무엇을 새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영란이 원망스럽고, 그동안 꽃을 재배해 온 내 인생이 슬프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러 온 농민이어서 슬프다. 한 농민의 피를 토하는 하소연이다. 이 농민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꽃바구니 한 개, 난 화분 한 개조차도 부정 청탁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에 대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 일평생 높은 자리에서 돈 걱정 없이 살아 온 사람들이 철따라 어떤 농사를 짓고, 어떻게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까를 걱정하면서 일해 온 농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들만의 생각, 그들만의 기준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라면서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고 하였다.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처럼 이유 있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농업분야에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들이 많다. 가령,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무원 등에게 난 화분을 선물하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범죄자가 된다.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원으로 정해져 있는데, 난 화분 가격은 5만원이 넘기 때문이다. 난은 지금까지 고상한 이미지와 함께 부피가 작고, 실내에서도 관리가 쉬운 점 때문에 인사 이동시 축하용으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난이 선물용으로 많이 이용되어 온 배경은 난의 상징성과도 관련이 있다. 난의 일반적인 상징성은 군자, 고아한 선비, 우정, 청초한 아름다움, 자손번창이다.

난에 군자라는 상징이 붙은 것은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가지고 있으며, 산 속에 있어도 그 향기는 널리 퍼지는 것이 군자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고아한 선비 및 청초한 아름다움이라는 상징은 티끌도 멀리하고 이슬만 마시고 사는 난의 삶이 선비들로부터 깨끗한 삶의 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난에는 이러한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난 화분이나 난 그림을 선물하여 상대방에게도 인격 완성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심산유곡의 난은 보이지 않더라도 향기로써 꽃이 피었음을 알린다.

이에 선비들은 스스로도 군자에 비유되는 난 그림이나 난을 옆에 두고는 남에게 인정받고자 애쓰거나 얼굴 표정만 바꾸는 얕은 행등을 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였다. 난 그림이나 난 선물은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선물, 우정을 다지는 선물, 근하신년, 행복과 치유의 기원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를 생각해 볼 때 취임이나 전직하는 공직자에게 보내는 난은 뇌물이라기보다는 축하와 더불어 공직자로서의 인품을 지켜 달라는 뜻이 되며, 이는 난 선물을 뇌물로 보는 시각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농산물 중에는 이처럼 뇌물로 보기 어려운 품목과 정서가 있고, 일부는 농민들의 생존과도 연계가 되어 있다. 현재 농업은 경기침체, FTA, 수입 농산물의 증가 등으로 점점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다. 화훼 농가만 보더라도 2005년에 1만 2천 859호 였던 것이 2014년에는 8천 688호로 32%나 급감했다. 그나마 남은 농가들도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농사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농민이어서 슬프다는 한 농민의 절규는 엄살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과 행정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라면 그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광양시 또한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예상되는 농민들의 피해 파악과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