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한‘사람사는 세상’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모두가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한‘사람사는 세상’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 이성훈
  • 승인 2017.02.03 21:01
  • 호수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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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운동 활동가 강필성 광양교육희망연대 상임대표 … 청소년 사랑이 가장 큰 정책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 등 우리 지역 각종 집회나 행사에 대부분 빠짐없이 참석해 행사 알림은 물론, 행사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행사때마다 좀처럼 지칠 법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사는 세상이 다가올 때까지 조그마한 노력은 하고 싶다”며 수줍게 웃는다.

강필성 광양교육희망연대 상임대표. 2015년부터 광양교육희망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데 광양교육희망연대는 2009년 12월‘경쟁에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를 기치로 새로운 교육 대안을 세우고자 18개 단체가 연대해 출범했다. 

강필성 대표는 교육 모임 대표를 맡고 있지만 우리 지역 진보 단체들의 연대 모임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실무진으로 참여한다. 강 대표는“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 역할이 저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면서“제가 마냥 부지런한 것은 아니다”며 웃으며 손 사레를 쳤다.

강필성 대표의 고향은 영광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광주에서 다녔고 광양에서 결혼하며 가정을 이뤘다. 스스로가 이제 고향은 광양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도 많다.

그는 언제부터 진보단체 활동에 관심을 보였을까. 강필성 대표는 고등학교 때 사회에 눈을 떴다고 한다. 6월 항쟁과 자율학습 폐지, 5.18 진상규명, 전교조 출범 등 80년대 후반 굵직한 사회 이슈들을 접하면서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친구와 광주 금남로에 가두시위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89년 5월 광주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고 이철규 열사의 시신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강 대표는 “총학생회와 동아리 회원들을 따라 현장에 갔었는데 이철규 열사 부모님이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옆에서 지켜봤었다”며“당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강 대표는 이후 대학에서 야학활동과 다양한 사회 운동을 하면서 진보 운동에 몸담게 됐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지역 배려 차원에서 영광 원자력발전소에 취직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는“부모님들이 고향 회사에 취직할 것이라며 기대도 잔뜩 했었는데 제 힘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시험도 안쳤다”며“당시에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엄청 컸다”고 고백했다.

이후 순천직업훈련원에서 공부하며 자격증을 몇 개 취득한 후 포스코 협력업체 몇 군데 다니기도 했다. 강 대표는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 대해 온몸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강필성 대표는“하루 12시간 근무하다보니 여가활동은커녕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고된 일상이 반복됐다”면서“일하면서 여기저기 몸도 안 좋아지고 월급이나 근무처 변경 등 여러 가지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실망이 컸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사랑의 몰래 산타 “참여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

2000년 광양에 정착한 강 대표는 여러 활동을 하던 중 지역 청년들과 2005년 11월‘광양사랑청년회’를 조직했다. 광양사랑청년회는 소통과 나눔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청년단체로 당시 지역 청년 30여명이 참여했다. 멤버들이 다양한 활동을 겸하면서 지금은 광양사랑청년회가 해체됐지만 당시 광양사랑청년회가 주축으로 만들었던‘사랑이 몰래산타 대작전’은 지금도 이어오면서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필성 대표는“몰래산타가 지금도 우리지역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고 있는데 해마다 이 행사를 추진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꾸준히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강 대표는 그동안 광양항 미군 병참기지 반대, 창덕 에버빌 아파트 부도 사태 해결, 세월호 추모, 고 양우권 노동자 자살 사태, 박근혜 탄핵 촛불운동 등을 비롯해 지역 현안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앞장섰다. 그는“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고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각종 집회를 준비하며 힘든 적도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은 매주 토요일 중마동에서 열리고 있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궂은일을 도맡고 있다. 날씨도 춥지만 마음은 뿌듯하다고 한다. 강 대표는 “집회에 참여한 인원이 적으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시민들이 격려해주고 우리를 보는 눈이 예전과 다름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집회 현장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선뜻 모금함에 건네는 시민들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강필성 대표는“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탄핵 인용은 충분하지 않겠느냐”며“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청소년·아이들 지원 더욱 늘려야

강필성 대표는 광양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더욱더 많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청소년 놀이 시설 하나 없는 광양의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청소년들이 광양에서 놀 곳이 없으니 순천으로 많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강 대표는“어른들을 위한 정책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부모들도 따라다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강필성 대표는 진보 운동뿐만 아니라 봉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봉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서는 봉사다. 몰래산타부터 지역 저소득 아동에게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올해부터 광양YWCA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찬 전달 봉사를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마다 하고 있다. 그는 올해도 지역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강필성 대표는“진보운동 계열도 젊은 층이 없어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우리지역 유능한 청년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많은 활동을 펼쳐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끝으로“광양과 여수는 대규모 공단으로 항상 산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며“우리 지역에 산재 전문병원이 들어서 지역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의료혜택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