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자본주의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 이수영
  • 승인 2006.09.28 17:01
  • 호수 1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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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안정의 시대가 아닌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연히 역사를 의식하게 된다.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쩔수 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역사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실로 굵직한 역사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살고 있음을 날마다 실감한다.

런데 나 혼자만 유난히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가장 큰 문제는 이 역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관한 우리의 방향감각이 미궁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한다. 미궁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어떤 큰 흐름조차 짚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백여년에 걸친 사회주의의 이념적 도전과 현실적 실험이 마침내 실패하고 온 지구가 자본주의의 전일적 지배 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짐작하겠다. '세계화'라는 구호에 의해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다름아닌 그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로 진입하자는 것임도 대강 알겠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승리에 의해 도래할 세계가 과연 어떤 세계일지에 대한 믿을만한 설명이나 뚜렷한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내게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이 가져다줄 장미빛 그림보다는 지구용량의 한계와 생태계의 파괴에 의해 초래될 파멸적 재난에 대한 비관주의자들의 경고가 더 따갑게 들린다. 만약 오늘의 이 세계가 전지구적 자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면 '세계화'란 그리로 가기 위한 마적(魔笛)의 소리 아닌가.

오늘의 산업화체계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해결하는 데 얼마간 기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류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한낱 이상주의자의 공염불로 치부되어 아무도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과거 한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설 대안적 이념으로 간주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힘을 쓸 때에는 자본주의 열강들이 제3세계 약소국들의 눈치를 살피는 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질주의의 무한팽창에 제동을 거는 어떠한 힘도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한때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회주의 자체가 바로 산업화를 앞당기기 위한 하나의 국가적 방법론에 불과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산업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더 효율적인 경로라는 것이 동구권의 몰락으로 입증되었다는 것 아닌가.

아무튼 제동장치가 고장난 채 점점 가속을 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산업체제는 바닥에 닿기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작동을 멈추게할 그 바닥이 무엇일지 나로서는 상상하기 두렵다. 지구의 앞날에 관한 묵시록적 예감이 한낱 기우이고 신경과민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종말의 징후들은 너무나 뚜렷이 가시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 징후들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번다함에 매몰되어 역사의 근본방향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불벼락이 내리기까지 쾌락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몰랐던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처럼.
 
 
 
 
2004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