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
당산나무
  • 광양뉴스
  • 승인 2017.03.17 20:45
  • 호수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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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광양시 농사꾼

칠순이 되어 내 어린 시절 오갈 때 마다 꿈을 빌어보았던 고향마을 어귀 당산나무 앞에 서있다. 12여그루의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들 중에서 누구도 일러 주는 사람은 없었지마는 마을의 연세가 가장 많은 어르신과 그분의 친구들이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비교해보아 수령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모두가 생각하였고, 당산제를 모시던 느티나무이다.

부모님의 꾸중을 들으면서도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 높은 가지에 올라 서로의 꿈을 노래하였고 달 밝은 밤이면 조용히 혼자 찾아가‘귀신이 세상에 참으로 있는가’도 물어보곤 했다. 항시 잠자리가 날아가 버릴까봐 준비 없이 서두르다 놓치는 날이면 멍하니 올려다보며 잡는 방법을 물어보곤 했다.

이제 자세히 보니 그 긴 세월 소박한 소망까지도 들어만 주었지 도와주지는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온몸에는 옹이가 박히고, 속은 문질러져 텅텅 비어 있다. 갑순이 가마타고 시집가면 대견하여 늦은 봄 긴 하루 허허 하고 웃고, 갑돌이 상여실려 뒷산가면 가슴 아려 가을 긴 밤 윙윙 울어,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가 되었나보다. 뒷산 나무들이 베어져 산감이 마을을 찾을 때나, 밀주단속반이 마을에 들이 닥치면 소리 없이 가슴 조이던 날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학교라곤 가보지 않고도 임진록, 옥단 춘전, 무영탑 등을 그렇게 구성지게 들려주는 이서방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도 라디오, TV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차츰 발길이 줄어들었고, 밭을 매는 아낙도 무논 매는 남정네들도 보기가 드물어 졌다. 이따금 찾아오던 동동구루무 장사도, 참외 장사도 발길을 끊긴지 오래 되었다.

삼구덩이를 메우고 발동기가 들어와 보리타작을 시작한 뒤부터는 먼 곳 소식을 전해주던 철새들도 오지 않고, 발동기가 사라진 뒤에도 텃새의 노랫소리마저 듣기 힘들어졌다. 자동차의 어지러운 소리를 들은 뒤로는 오리 밖 읍내 5일장에서 물건들 사고파는 사람들 흥겨운 소리도, 출타 후 귀가를 알리는 이서방의 큰 기침소리도 듣기가 힘들어 졌다.

이제마을 사람들의 대접도 소홀하여져 허락도 받지 않고 무엄하게도 스피컨가 먼가를 매단 후 부터는 이장 놈 시도 때도 없는 고함 소리에 요즘 들어 유일한 낙인 졸음을 방해받는 것도 다반사가 되었단다.

이상한 것은 마을사람들이 사는 집도, 입는 옷도 좋아지고, 지나가며 보여주는 장바구니도 몰라보게 풍성해 졌음에도 표정은 밝지 않고 한숨들은 왜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단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지만 추석 무렵에는 마을사람들이 모두모여 도구통이나 큰 둥근 돌을 들어 올리며 힘자랑 들을 하며 즐거워했다.

이겼다는 자만심도 지고 말았다는 아쉬움도 없이 그저 이웃하여 살아간다는 것만이 서로에겐 소중하였다. 설 뒤에는 으레 당산제를 지낸 뒤 두레기를 앞세우고 매구 꾼과 같이 마을을 돌며 서로의 소원을 빌어주고 축복해주며 흥과 신명으로 노동의 고달픔도 풀며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던 좋은 시절도 있었다.

여느 소원 하나 들어준 것 없었지만 그때가  차라리 그리워진다며, 그저 들어만 주는 것만도 이제와 생각하니 소중하였다며, 오늘도 뙤약볕 쉬어가라고 두 팔 넓게 벌리고 그 자리에 변함없이 홀로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