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민주시민 교육이다
이제부터 민주시민 교육이다
  • 광양뉴스
  • 승인 2017.03.24 20:36
  • 호수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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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탄핵으로 시작된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지 않은 결과의 파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극소수라 하지만 태극기를 들고 외치는 분리된 민심이 국민의 통합을 가로막는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며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제반 분야의 극심한 갈등의 주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분명히 다른 선진국과 비교되는 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제도적 민주시민 교육의 부재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다. 왕은 이미 오래전 우리 나라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국민이 주인되는 민주공화국 국민이다. 이 시대에 맞는 국민의식이 민주국가를 만든다.

민주시민 교육이란 국민 개개인의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며 국가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의사소통을 통하여 권리와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역사상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히틀러의 합법적인 집권이 이뤄졌다. 이는 결국 국민의 시민의식 부재에 기인했음을 간파하고 초당적 국가기관을 통해서 민주시민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가장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정부와 학계 및 시민단체 등에서 개별적 시민 교육 활동을 하며 입법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우리도 입법화를 서두르고 통합적인 민주시민 교육시스템을 체계화시켜 성숙한 민주사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아직도 착각인가, 자유인가 모를 정도로 혼동되는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구호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한 상인은 대통령이 왕이란다.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엄연히 대통령이라 함은 국민의 선택을 통해서 선출되고 국가의 권력을 위임받아 권한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그래 공무원, 선출직 별정 공무원, 별정이란 별도로 법률이 정해진 직분이라는 뜻이고, 왕은 선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왕은 신분상 물려받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이란 무서운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국민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는 상황에서 혁명공약을 외우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이처럼 일부 국민은 우선 먹고 살기 바빠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공부도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저 선거하라니 선거하고, 누가 찍으라니 찍을 것이고 먹고 살고 장사하며 사는 고민은 했어도 내가 살고 있는 체재의 존재 근거에 대해 고민 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왕, 마마라고 착각하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헌법 1조,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나온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모토로 삼는 공화국이라고 했다. 대체 공화국의 공화는 무엇을 말할까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공화의 국가, 공화의 의미를 따져 물어 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이 나라를 왕이 통치하는 왕정제 국가로 착각하는 것이다.

체제와 현상을 파악하는 데는 책만한 것도 없다. 물론 강의를 듣고 전문가들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게 지식을 얻기에 좋겠지만 장소와 시간의 제약 때문에 다량의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나 책은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도 책이란 쪽배를 타고 노를 저어 현상의 물결을 헤쳐 나가야 한다.

정보와 지식이 차단당한 우민은 결국 틀린 정보를 사실로 믿는 맹신에 빠지기 마련이다. 복지를 높인다고 겨울철 시골 어르신 집에 보일러만 보면 안 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인터넷도 필요하고 늙어서라도 최신 트렌드에 부합된 정보와 지식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늙어갈수록 평생에 겪은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고집이 세지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며 바뀌는 것에 저항하게 된다. 세상은 나날이 달라지는데 머릿속은 여전히 모습은 조선시대의 상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 개념 없는 머리로 오늘을 바라보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이를 보고 등하교하는 삼성동 초등학생들도 매우 고역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