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 광양뉴스
  • 승인 2017.04.28 18:13
  • 호수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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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 광양시 농사꾼

노령화 시대를 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와 그 역할을 생각해본다. 소위 나이 값은 하고 사는지, 생명연장을 희망하고 노력하는 만큼 늘어난 삶을 보다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에 생각이 자주 멈춘다.‘장수를 고독과 무료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욕심을 내려놓고 좋은 습관을 찾아 몰입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본다.

일 년을 크게 사계절로 나누든 작게 이십사절기로 나누든 그 구간들에는 나름의 소중함이 있고, 자연은 꽃이 피는 좋은 시절 못지않게 싹을 틔우고, 잎과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어 영글고, 낙엽이지는 시기 또한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존재의 순환성과 늙음의 소중함을 성찰 해보기도 한다.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일부정치인들을 보며 젊은이들과 노령 층을 비교해보면서 나는 세대 간 차이라는 이해를 넘어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젊은이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분명 미래를 지향하는 희망과 평화를 읽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찬사도 받았다. 그러나 노령 층들은 크게 대조를 보여주었다.

잊혀 지기를 두려워하는 몸부림일까? 전문성과 탐구적 노력을 넘어서는 비합리적인 주장들이 다반사였고“지혜를 넓히려는 마음이 멈춘 자리에 들어선 아집도 보였다”“원자보다 깨기 어렵다는 편견도 있었다”성찰과 홍익인간의 정신과 거리가 먼 전쟁과 동의어인 무소불위의‘안보’를 덧씌우고, 해와 달·공기와 물 등 공유의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부터인가 등껍질처럼 달라붙은 개별성이 난무하고 있었다.

“국가, 종교. 지역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갈등의 부추김”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나이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진리를 철저하게 뭉개버리는 몰염치만 보이고, 공존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인‘내 탓이요’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김소행이 삼한습유에서 말하는“환(幻:환상,꿈)이 극에 달하면 진(眞)이 되고 진이 극에 달하면 신(神)이 된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였다.

노령화로 치닫는 사회에서 나이든 어른들의 역할과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마음과 행동을 생각해보면서 나는 먼저 우리선조들이 소중히 간직해온‘선비정신’이 생각났다. 선비정신이란 대의와 명분에 근거하여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바르고 큰마음이며,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럼이 없는 용기 있는‘호연지기’의 정신이다.

인격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사보다는 공을 앞세우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는 노령의 나이에 가장 소중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조시대에는 이러한 선비정신을 앞서 실천하며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는 처사(處士)를 때론 대제학이나 영의정보다 더 존경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 않은가.

 20세기 인도 철학자이자 인류의 큰 정신적 스승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삶의 근원적인 의문과 심오한 지혜를“위대한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많은 책들에서보다 일상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느끼는 예민한 인식을 통해 스스로 변화해야하고 관계의 거울을 통해 관찰될 수 있다”고 했다. 일상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으라는 뜻일 것이다.

내가 농사를 지으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은“흙이 가르쳐 주는 것이 책보다도 더 깊고 넓다”는 말이다.

오늘도 뒷산의 숲길을 산책하면서 계절 따라 피고 지는 들꽃들과 존재를 지워가는 그루터기들, 이끼 낀 바위, 먼 산위에 걸쳐있는 구름을 보며‘나이 듦’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혼자 도드라져 고독하지 말고 우주의 순환에 포근히 안기라고 일러 주기도 하고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선하고 착하게 살아보라고 귀뜸도 해준다.

인간의 마음이 행복감으로 가장 고양된 상태는“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아 놓고‘야호’하고 외치는 그때”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이 늙어지면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하늘에서 타고난 그대로 핀 꽃’이라는 의미의 천진난만(天眞爛漫)의 마음으로 하루 삼백 번 이상 웃고 살아보고 싶은 이 마음 또한 과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