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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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7.05.26 19:15
  • 호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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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 눈부신
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 사무국장

오월은 아카시아 향내와 함께 찾아온다. 숨 가쁘게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다, 어느 날 문득 코끝으로 스며드는 아카시아 향내에 오월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월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만든다. 나뭇가지들은 푸른 물들을 조금이라도 더 머금기 위해 잎들을 있는 대로 피워 올리고, 꽃들은 다투어 어여쁜 자태를 뽐낸다. 풀잎들도 질세라 보드라운 줄기에 싱그러운 윤기를 한껏 더한다. 그들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살아있어 눈부시다고.

그런 자연 앞에 선 나도 초록빛 밟고 오는 오월의 신부처럼 설레고 들뜬다.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에 심장이 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것이 가슴 벅차도록 기쁘고, 오감으로 다가오는 눈부신 햇살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답고 눈부신 햇살 아래서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워서, 세상이 나를 버려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데 나만 불행해서, 꼬여버린 내 인생의 매듭을 풀기 위해’라는 등등의 이유로 세상을 향해 등을 돌린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 고통스럽고 슬픈 일들이 더 많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지병을 가진 채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과 슬픔을 먹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외면해버린다. 자신만 슬프고, 자신만 고독하고 자신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고 단정지어버린다. 고통스럽고 슬프다며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 번 쯤은 죽음을 꿈꾼다. 삶이 조금만 힘들어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화가 나도 죽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행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만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살하는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OECD 주요 36국가 중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24위이고 자살률은 1위이다. GNP가 2만 7 천불에 다다르고,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 몸살을 앓고 있는 살기 좋은 나라에서 왜 사람들은 자살을 꿈꾸는 것일까.

유명한 교육학자 맨(Mann)은‘자살의 스트레스-취약성 모델’을 제시했다. 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요인을 가진 사람에게 생활사건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주어졌을 때 자살이 유발된다는 가설이다. 처음부터 자살에 이를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했던 핀란드에서‘심리적 부검 연구’를 진행한 결과, 자살자들의 80%는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이 있었으며, 그것의 90%는 우울증이었다.

정신의학적으로도 우울증, 조울병, 알코올 남용(의존) 등의 질환은 자살위험을 높인다고 한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자살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정신질환을 들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자살자의 80% 이상에서 진단할 수 있는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

특히 우울증, 조울병 같은 정신질환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만들거나, 앞에 놓인 어려움에 대해 전혀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삶을 낙천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죽음 외에는 고통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의 표현이다. 정말 잘 살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서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다. 설마 내가 죽을까? 하는 마음과, 자살을 시도하면 누군가가 와서 구해줄 것이라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 혹은 자살을 시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심리를 자극한다. 전화를 할 때 죽음을 암시하는 음악을 함께 틀어놓기도 한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평소와 다른 말에 불안을 느끼고 찾아간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놓인 이를 구하게 된다. 의사들의 말도 한결 같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그‘조금’이라는 말이 자살 시도자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다카하시 요시모토도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고 했다.「자살한 사람의 80~90%는 실제로 자살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신호를 보내거나 자살하겠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말한다. ‘도와 달라’는 외침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했다. 그 진리를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인의 그런 의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나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은 시련 앞에도 절망한다. 이유 없이 피해의식을 느끼고, 혼자만 힘들게 살아간다고 하소연한다. 피의자이면서 피해자인양 울분을 토한다. 그것이 참을 수 없으면 극단적인 방법으로 라도 증명해보이려고 한다.

2년 전 뜻하지 않게 눈을 다치고 실명할 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죽고 싶었다. 나를 절망 속으로 빠뜨린 신을 원망하였다. 그 때 나는 뒤늦게 간 대학원에서 마지막 학기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것이 끝나면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받는 일만 남아 있었다.

보름동안은 눈을 뜨면 실명할 수 있다는 말에도 나는 리포트 쓰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한 쪽 눈을 다치면 다른 쪽 눈도 안 보일 수 있다고 했지만 어렵게 공부한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치지 않은 눈만 겨우 뜨고 과제물을 해서 담당 교수들 에게 보낸 후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지만 30분 이상은 컴퓨터를 봐서는 안 되고, 10분을 보면 10분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나는 하루에 열 시간이 넘도록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을 때가 많고, 책을 읽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 시력이 점점 나빠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다. 실명할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못한 채 지낸다는 것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 가족들을 무엇보다 사랑한다. 그래서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고, 하는 일들도 멈출 수가 없다.

오월의 나뭇잎들이 날마다 더욱 짙푸른 물감들을 빠르게 길어 올리고 있다. 담장 위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넝쿨장미들이 매혹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살아 있어 눈부신 이 오월에, 나는 담장을 휘어 감고 있는 붉은 장미를 오래도록 눈 안으로 넣어본다. 아직은 세상 모든 빛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어다녀야 하는 바쁜 일상에도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