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같은 나의 직장‘광양신문’ 창간 18주년을 축하하며
친정 같은 나의 직장‘광양신문’ 창간 18주년을 축하하며
  • 광양뉴스
  • 승인 2017.11.03 20:01
  • 호수 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혜선 시민기자

광양신문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5년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내 기억의 가장 따뜻했던 추억의 일부는 항상 광양신문에 맞닿아있다. 2012년 2월에 광양신문으로 첫 출근을 했다. 아직은 추웠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직장, 낯선 사람들과의 출발이 어렵게 느껴지던 때였다.

특히나 지역신문, 종이신문을 만든다는 이곳이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했지 진짜 그것을 직업으로 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사장님과 국장님, 상무님도 참 무모한 도전을 하셨던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신문은 2012년 2월 20일자에 발행된 451호였다. 그때 그 신문에서 나는 두 꼭지의 기사를 썼었다. 특히나 그 신문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 신문의 꽃인‘사람과 사람들’면(맨 마지막 면)에 나의 친구 이야기를 썼었기 때문이다.

연기와 개그를 하며 복싱까지, 다재다능했던 그 친구의 이야기가 나의 첫 기사였다. 그해 1월에 있었던 동양태평양(OPBF) 한국웰터급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양정훈(포항)선수를 10라운드 판정승으로 이기고 2012한국웰터급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내용이었다.

고치고 또 고치고, 내용은 틀린 점이 없는지 오타는 없는지 몇 십번을 확인하며 국장님께 오케이사인을 받을 때까지 긴장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쓴 글과 사진이 정말로 신문에 인쇄되어 나왔을 때 느낀 그 희열과 보람.‘정말 내가 쓴 기사가 신문으로 나오는구나!’첫 신문은 신기한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기사를 본 내 친구와 그의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 그 친구는 이 세상에 없다. 불의의 사고로 좀 빨리 다른 곳으로 갔다. 황망했던 친구의 죽음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첫 신문 첫 기사가 그 친구의 이야기였고 그 기사로 참 많이 기뻐해줘서 친구의 짧은 인생에 작은 기쁨을 선물한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입사했던 그 해의 창간 신문은 11월 5일 발행된 487호였다. 13주년 창간신문이었는데 그때 그 신문을 만들면서 우리 신문이 인쇄되는 경남 진영의 중앙일보 부산사업장에 갔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신문 탁송을 맡아주시는 핸들이네아저씨를 따라 사진촬영 차 방문한 것이었는데 우리 신문이 인쇄되는 과정을 직접 내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니 얼마나 신기했던지. 사진을 수백 장 찍었었다.

(신문에는 한 장 실렸다^^)

정아람 기자와 함께 광양 이곳저곳에서 택시 기사님들을 만났던 다짜고짜 인터뷰도 재밌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명함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며 기사거리를 건져내야 하는 일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땐 참 배짱이 두둑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취재를 몇 가지 꼽는다면 광양시사랑나눔복지재단의 희망100인 기부릴레이와 광양시청 구내식당에서 일일 체험을 했던 것이다.

기업 또는 단체, 개인 기부자 100팀을 취재하던 일이었는데 매주 직접 챙기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다. 기부릴레이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정말 큰 숙제하나 끝낸 것처럼 얼마나 홀가분했던지. 재단에서 감사장도 챙겨주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광양시청 구내식당 일일체험은 14주년 창간신문 때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아이템이었다. 항상 가서 먹기만 하던 곳에서 직접 25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양파 100개 까기. 눈이 얼마나 맵던지. 그 이후에 더욱 더 감사하는 맘으로 시청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광양신문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참 좋은 추억이 많다. 물론 일을 배우고, 아이템을 고민하고 시간에 쫓기며 야근하던 날들, 몸과 맘이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 좋은 것만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 곳이 나에겐 다른 어떤 곳보다 따뜻했었나보다.

다른 회사에서 일할 땐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더우면 여름이구나, 추우면 겨울이구나 이 정도. 하지만 이곳에서 일할 땐 광양 소식을 취재하러 매일 곳곳을 누비니 봄빛에 기지개켜는 새싹도 눈에 들어오고 시원한 계곡물아래 춤추는 작은 물고기도 보였다. 가을이 되면 총동창회로 주말마다 잔치 같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햇살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수많은 광양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던 건 광양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애향심, 이런 건 내 인생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 중에 하나였는데 광양을 직접 만나고 듣고 체험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고향을 아끼는 맘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곳의 소식을 직접 전하는 나의 일에 보람도 크게 느꼈다.

회사식구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가족처럼 날 배려해주셨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꼭 먹게 해주셨던 것도 생각이 난다. 직장인의 최대 고민 점심메뉴는 뭘 먹을까 고민하던 시간들도, 함께 차타고 나가 구내식당에서 먹었던 그 순간도, 회사식구들과 함께 사장님께서 데리고 가 주셨던 물 횟집, 다슬기수제비집도 모두 좋았다. 사장님과 상무님은 아빠 같았고 국장님은 오빠 같았으며 총무님과 편집 기자님들은 언니 같았고 동료기자는 내 여동생 같았다.

내게 광양신문이 친정 같은 이유는 좋은 추억이 있고 항상 그 자리에서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제 만난 사람 같고 항상 내가 잘 되기를 빌어주시는 고마운 식구들이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을 이끌고 나가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더욱 하기 힘든 일이 바로 지역신문을 만드는 일이다. 가장 오랜 시간 광양의 역사를 기록해나가고 있는 광양신문이 더욱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창간 1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참 고맙습니다.

이혜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