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문학에 물들다’<6>-품격 있는 문화도시, 유네스코 문학도시 광양! 문학관 건립으로…
‘광양, 문학에 물들다’<6>-품격 있는 문화도시, 유네스코 문학도시 광양! 문학관 건립으로…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7.11.03 20:09
  • 호수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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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객주’‘활빈도’‘화척’ …‘길 위의 작가’김주영을 만나는 곳‘경북 청송‘객주문학관’

전국 문학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경북 청송의‘객주문학관’은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초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 낸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 대하 역사소설‘객주’를 테마로 지난 2014년 6월에 개관했다.

폐교된 진보면 제일고등학교를 청송군이 75억 원에 사들여 증·개축한 4640㎡ 규모의 3층 건물로 김주영 작가의 소설‘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영상교육실, 창작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시설, 1.2 전시실, 그리고 작가의 집필실‘여송헌’등으로 되어 있다. 객주문학관이 청송에 들어선 이유는 김주영 작가가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가을여행지중 으뜸으로 꼽는 청송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방안으로 지자체가 김주영 작가를 설득해 개관 3년을 맞았다.

1전시실과 2전시실, 전시관 2층과 3층은 소설‘객주’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전시실로 꾸며 작품과 관련된 전시뿐 아니라 조선후기 장터를 중심으로 활동한 보부상들의 활동모습을 알 수 있는 조형물도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객주’를 집필하면서 대학노트에 썼던, 한 페이지 분량이 원고지 30매 이상 되는 작가의 깨알 같은 취재노트와 육필원고 일부, 수집 자료, 취재할 때 사용한 카메라와 수십 개의 철필 등 작가의 개인 소장품을 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아직 살아있는 작가의 문학관을 짓겠다는 청송군의 말에“살아있는 사람에게 문학관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 대한민국에 얼마나 훌륭한 작가들이 많은데 나처럼 중간급도 되지않는 사람의 문학관을 세우려고 하느냐며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자체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군수의 열정에 마음이 움직인 김주영 작가는“문학관이 내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은 없고 국내에서도 소문난 오지중의 오지인 고향에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문학관 운영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고 개관 초기부터 3년 동안 공간배치 등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문학관이 더욱 더 활성화 되도록 가꾸고 있다.

‘길 위의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 김주영은 올해 만 78세의 노작가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5년 동안 전국 200여개 장터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재를 하는 4년 9개월 동안 집에는 한달에 열흘도 머무르지 못하고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다니며 현장에서 글을 썼다. 1979년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했고 당시 타 신문사에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와 황석영의‘장길산’이 동시에 연재되고 있었다고 한다.

김연화 문학관 해설사는“두 작품 보다 대중에게 덜 알려졌던 소설‘객주’는 작년에 한 방송사의 드라마‘장사의 신’방영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문학관을 다녀간 사람들은 객주가 완성된 과정을 알고 난 후에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집념과 투혼에 감동 받는다”고 설명했다.

 
   
 
 
 

객주문학관은 주왕산 국립공원과 함께 청송군을 관광의 메카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도 하고 있다. 해마다 1만 5000여 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어 문학관 관람 후 인근 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관람객의 발길에 힘입어 청송군의 지역경제도 더불어 살아나‘청송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30년만에 완간한‘객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끝까지 쓰겠다.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작품의 원동력은 어린 시절 겪은‘가난과 외로움’

 

김주영 작가의 꿈은 원래‘시인’이었다고 한다.

김동리, 박목월 선생이 있는 서라벌예대에 진학했고 시를 써서 박목월 선생에게 보였으나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궁금해서 용기를 내어‘시를 드렸던 학생이다’며 자신이 쓴 시에 대해 물었다.

박목월 선생이‘자네는 운문에는 소질이 없네’단 한마디를 해주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김 작가는 휴학을 하고 자원입대 했다. 제대 후에는 안동에 있는 지금의 담배인삼공사에 취직했다. 이후 단편, 중편 등을 쓰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보부상에 관한 대하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객주’집필을 시작, 1979년 6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했다. 1984년 2월 29일까지 4년 9개월 동안 1465회에 걸쳐 1~9권, 이어 2013년 4월 1일부터 8월 21까지 108회 걸쳐 10권이 연재됐다.

문학관 해설사는“김 작가는 천봉삼의 죽음으로 마무리 하는 것으로 9권까지 썼지만 이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고 했다. 1984년 9권이 출간되었으나 작가는‘완간’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경험이 부족하고 역사적인 지식이 짧아서 거짓으로는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고 전했다. 이어“2009년, 울진과 봉화 사이에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길이 조선 후기 울진의 염전과 내륙의 장시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고 보부상들의 삶의 동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길 위에 서게 됐다”며‘꼭 써야 겠다’마음을 먹은 후 소설‘객주’는 2013년, 30년 만에야 완간됐다고 설명했다.

김주영 작가는 2013년 객주 완간 이후 여든을 코앞에 둔 2017년 4월, 4년 만에 ‘뜻밖의 생’을 펴내고 노작가의 집념과 작품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뜻밖의 생’은 노름꾼 아버지와 그의 폭력에 시달려 무당에 의존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주인공에게 외로움, 따돌림은‘덫과 같은 숙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노작가 김주영은‘끝까지 쓰겠다’,‘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집념으로 고향 청송으로 내려와 문학관에 마련된 집필실‘여송헌’에 머물며 창작에 몰두, 1년 만에 장편을 완성했다.

2012년에 발표한‘잘가요, 엄마’는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 등단 이후 처음 선보이는‘사모곡’으로, 어린 시절 아픈 기억만 남은‘고향’을 떠나 살면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버리지 못한 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이부(異父)아우와 함께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엄마’를 보낸 작가의 실재 이야기를 담았다.

타 문학관과의 차별성은, 많은 자료와 숨은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보여 준다는 것

 

개관 3년 만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유명세’를 타는 문학관이 되자 김주영 작가는 작가로서의 책임을 더욱 느낀다고 한다. 김 작가는 수년 동안 전국 200여개 장터를 돌아다니며 취재 했던 사진과 자료 등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자료를  청송군이 직접 운영하는 문학관에 차근차근 기증하고 있다.

김연화 문학관 해설사는“처음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무슨 문학관이냐며 반대하던 작가는 많은 자료와 이야기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다”며“작가는 오지중의 오지인 청송에 와서, 또 이곳 문학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뭔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작품에 일일이 서명을 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객주문학관이 특히 전국의 다른 문학관과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전문 문학매체 또는 신춘문예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을 대상으로 시와 시조, 소설, 수필, 아동문학, 평론, 희곡 등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지상의 방 한 칸’이 필요한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숙식을 포함한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문학관 뒷편으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고, 마당에는 가을 빛으로 물들어 가는 꽃과 나무들이 있어 경관도 볼 만한 편안한 문학관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