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노인복지관 성인문해교실을 가다!
광양노인복지관 성인문해교실을 가다!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7.11.03 20:24
  • 호수 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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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노인복지관 성인문해교실, 어머니들의 즐거운 인생학교!

 ‘못 배운 한과 설움’을 풀어주며 서로의 살아온 생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는 어머니들의 건강한 놀이터

 

“제가 읽으면 어머님들 따라 읽으세요.‘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

광양노인복지관에서 성인문해교실 1단계 반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 배울 단원은‘햇볕은 쨍쨍’.

아침 일찍 꽃단장을 하고 나온 15명의 학생들은 자신들보다 조금 젊은 선생님을 따라 교재에 나와 있는 동시를 또박 또박 읽었다.“반장 어머님이 한번 읽어 보실래요?”(선생님은 학생들을 어머니라 불렀다)

선생님이 주문하자 반장 어머니는 조금 전 읽었던 동시를 큰 소리로 자신 있게 읽어냈다. 선생님이“잘 읽으셨죠?”하자 학생들은 동시에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감사합니다” 박수를 받은 반장 어머니의 답례가 이어졌다.

선생님은 이어 어릴 적“노래로도 불렀다”며 이런 노래를“동요”라 하고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노래는“가요”라고 알려주며 노래를 같이 불러보자고 했다.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서툴게 동요를 불렀다. 어릴 적 많이 부르고 놀았던 동요다.

“제가 이 노래 불러 드려볼까요?”뒷자리에서 어머니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나도 뭔가를 해드리고 싶어서’일어서서 큰 소리로 동요를 불렀다. 반장 어머니처럼 박수를 받았고 또 반장 어머니처럼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반장 어머니가“동요는 잘 모르고 가요는 잘 부른다”고 하자 선생님이“앞으로 나오셔서 한곡 부르세요”라고 또 주문했다. 반장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정말 좋았네’를 구성지게 불렀다.

“이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어서 외롭고…”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반장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고 나더니 조금 전 밝은 모습과는 달리 잠시 쓸쓸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학생들의 박수를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들의 그 동안의 삶이 녹아있는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문해교실이다.

선생님은 노래로 살짝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며“소반이 뭘까요?”하며 동시에 나오는 단어를 설명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도로 어릴 적 소꿉놀이의 추억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공부를 했다.

‘여자는 글을 배우기 힘들었던 시절’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사느라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또 먹고 사는 일과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70, 80, 90 평생을 답답한‘문해의 삶’을 살아야 했던‘어머니’들이 이제야 당신들의 삶을 찾고자 광양시에서 운영하는‘성인문해교실’학생이 됐다.

광양읍 노인복지관 문해교실을 지도하는 박계환 강사는“1단계 반에서 공부하는 어머니들은 60대부터 90대까지 있다. 그 중 80대가 많다”고 말했다.

충북이 고향인 박 강사는 젊은 시절 중.고교에서 교사를 했으나 남편을 따라 광양으로 오면서 교사생활을 접고 전업주부로 생활하던 중 문해교육 강사 양성교육을 받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문해교실에서 어머니들과 만나고 있다.

박 강사는“치매 걸린 시어머니 병수발을 7년이나 했으니 이젠 그만해도 된다고 남편이 반대했다”며“강사 자격증을 받고 봉강 어느 마을에 실습을 하러 갔는데 교실도 아니고 책상도 없는 바닥에서 어머니들이 어렵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문해강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 중 가장 잘한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씩씩한 반장 어머니 조순이 씨는 올해 일흔 한 살이라고 했다. 조 씨는“‘만약 당신이 여기 오면 나는 당신을 때려 죽이겠다’고 써놔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캄캄한 세상에 살았다. 이제 세상이 환해졌다”며“학교 오는 날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뭔 세상이 이리 좋은 세상이 있는지, 늙은 사람 떠받들고 글도 가르쳐 주는 좋은 세상이다”고 좋아했다.

50분의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학생들은 집에서 챙겨 온 과일을 깍고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떠들썩,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공부할 시간, 떠들썩한 쉬는 시간의 분위기는 다시 진지한 공부 모드로 돌아갔다.

어머니들이 2교시 공부를 하는 동안 1단계 반에서 공부한 학생의 일기를 읽게 됐다. 일기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읽으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지만 틀린 글씨를 교정해 준 흔적이 있는 일기장을 강사가 가져다주며“이렇게 잘 쓰셨어요”하고 자랑을 했기에 그냥 읽었다.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써내려간 일기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남편과 자식과 이웃을 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 나이 드신 어른을 정성껏 챙겨드린 이야기, 직장 다니는 딸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주말에 편히 쉬게 해주고자 몸이 피곤한데도‘딸네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하고 온 이야기, 손자와 놀아 준 이야기, 남편에 대한 고마운 이야기 등등 일기의 주인공은 자나 깨나 자식 생각,  손주 이야기뿐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소풍가기 전날 들떠있던 마음을 잘 표현한 어느 날의 일기를 읽으며 사라지지 않은 천진난만한 어머니의 동심도 읽을 수 있었다.

일기를 읽는 동안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의 숙제를 내주었고, 지난 번 내준 숙제를 검사했다. 숙제검사도 끝나고 이제 두어 시간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4일, 서천변에서 펼쳐지는‘2017 광양시 평생학습 한마당’에 가야 하니  몇 시까지 어디로 와야 한다고 공지사항을 전달하자 한 어머니가“그날 영감 지산디 나는 못오겄네, 며느리가 늦게 옹께로 나가 다 해야 될텐디 어째야 쓰까 이~”하며 애를 태우자 한 어머니가“그라믄 영감을 나중에 오라고 해” 라고 말해서 선생님과 학생들을 웃게 만들었다. 

마음이 놓이지 않은 선생님이“골든벨도 하고 여러 가지 체험할 것이 많아 재미있으니 꼭 오셔서 좋은 시간 보내시라”고 당부하며 수업을 마쳤다.

광양읍 노인복지관에서 단계별로 진행하는 성인문해교실은‘못 배운 한과 설움’을 풀어주며 서로의 살아온 생에 대해 공감하고 격려하는 어머니들의 건강한 놀이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