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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시민과 함께‘문화가 있는 산책’
유당공원-인동숲으로 이어지는 광양 숲에서 역사문화관까지…
[741호] 2017년 12월 15일 (금) 18:12:59 김영신 기자 yskim0966@naver.com
   

△ 고 이경모 선생이 찍은 1946년 2월 유당공원(사진제공=광양문화원).

‘문화가 있는 산책’,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우리 삶 깊숙이 천천히 녹아 든 치유의 마약 ‘문화’라는 단어가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당공원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문화관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란 말인가?

   
 

평소, 카풀인지 도킹인지 잠시 휴가를 얻은 차량들만 즐비하게 서있던 유당공원의 쓸쓸한 모습이 사람의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지난 14일,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간여행을 떠나기 위해 유당공원 충혼각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 광양읍에서 나고 자라 터를 잡고 오랫동안 살아오신 어르신, 향토역사문화에 관심 있는 시민 40여 명은 이날 이야기꾼으로 나선 김휘석 광양학연구소 연구원(전 광양문화원장)의 마이크 앞으로 모여 들었다.

기자도 사람들 틈에 끼어 귀를 쫑긋하고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여정을 확인해보니 유당공원과 인동숲,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천하일미 마로화적 광양불고기가 유래된 마을, 읍성 남문터, 5일장이 있던 자리를 지나 광양역사문화관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번 시간여행은 광양학연구소가 광양시문화도시사업단의‘향토문화거점 조성지원 사업 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되어 준비 한 것이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400년 훌쩍

넘은 고목들의 속삭임  ‘유당공원’

갑자기 위세를 부린‘동장군’의 심술로 공원의 호수가 살짝 얼었다. 그 위로 사뿐히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 작은 새 두 마리의 모습이 그림 같다. 유당공원은 1528년 조선중종 23년에 광양읍성을 쌓고 멀리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군사보안림과 풍수해를 막았던 방풍림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 가는 크기의 이팝나무가 천연 기념물 제 2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당공원은 한국정원의 대표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저수지 경계선의 돌을 쌓아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원의 차이는 돌을 쌓는 방법이 다르다”며“남해안을 대표하는 푸조나무 등 400년이 훌쩍 넘는 고목들이 연못과 어우러져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당공원은 공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김휘석 전 문화원장은 설명했다.

1900년대 전후 옛 사람들의 공적비를 모아 둔 비림, 활을 쐈던 유림정이 있던 자리를 지나 등 뒤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바스락 바스락, 찬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밟고 인동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학, 여순사건... 유당공원의 아픈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세암’정채봉의 고무신 이야기가

있는 인동 숲을 지나‘세수재’로…

   
 

광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문학의 자양분을 키웠던 정채봉의 광양 이야기들을 살리지 못한 채 순천에 뺏기고 지금까지도 뒷북도 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있는 인동 숲에 왔다. 인동 숲 옆 동초등학교를 다녔던 정채봉은 신발을 나무에 던져 팽나무 열매를 따먹었다.

많은 독자들을 울린 그의 소설‘오세암’에서 스님들을 골탕 먹이려고 스님의 고무신을 모두 나무에 걸쳐놓은 장면은 바로 어린 시절 광양 숲에서 팽나무 열매를 따먹던 추억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휘석 전 문화원장은“나무를 많이 심어 나무 벽을 쳐서 여천공단 등 주변에서 오는 유해공기를 차단해 주는‘인동 숲’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은 바람직 한 것이다”며“나무 관리에도 더욱 신경을 써서 인동 숲의 본래 기능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동 숲을 지나 돌담이 아름다운 골목으로 들어서니‘세수재’가 나온다. 읍성과 본정통을 이어주는 이 골목길은 원님이 지나다녔다 해서 원님골목으로 불렸다고도 하고 골목 입구에 벅수(장승)가 서있었다고 해서 벅수길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세수재’에는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시묘살이를 하다 죽은 우달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임금이 내린‘정려비’가 있다.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마을에 세운 비석을 말하는 것으로 우달홍의 정려비는 1895년 고종이 내렸으며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 1호로 지정돼있다.

   
 

천하일미 마로화적, 광양불고기는

언제부터 그 맛을 자랑했을까? 

 

읍성으로 가는 길, 어디선가 맛있는 불고기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정회기 광양학연구소장은‘천하일미 마로화적’광양불고기가 유래된 곳은 남문 밖, 지금의 가마솥 국밥집 아래 마을이라고 말한다.

정 소장은“그 마을에서 백정들이 살았다. 유배를 왔던 선비들이 성문 밖에 사는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자 백성들이 그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고기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광양불고기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기원이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망해루’가 있던 남문터를 지나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 광양역사문화관에 도착했다. 문화관 옆에 한국의 로버트 카파 이경모 선생의 생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경모 선생의 이야기도 정채봉 작가 처럼‘알맹이’는 다른 동네에 다 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등록문화재 제444호로 지정된 광양역사문화관에서 친절한 해설사로 부터 국보 쌍사자석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문화가 있는 산책, 시간여행’을 끝냈다. 광양여고 김은서 학생은 “광양에 살면서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시간여행’에는 3명의 광양시 명예통역관도 함께했다. 중국어 명예통역관 김광애 씨는“광양에 대해 소개할 때면 전반적으로 뭔가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유당공원에 대한 부분은 관광홍보 책자에 나와 있는 게 다여서 공부가 필요 했었다”며“문화가 있는 산책은 앞으로 광양 구석구석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만족해했다.

김동관(57,광양읍)씨도“광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세수재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걸으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서 좋았다”며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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