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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향기> 새해에 가져보는 소망
[743호] 2017년 12월 29일 (금) 19:18:59 광양뉴스 webmaster@gynet.co.kr
   

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니가 정말 미경이가 맞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드디어 어머니께서 나까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세요?”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눈을 맞추며 여쭈어보았다.

 “니가 미경이라 해서 정말 맞나 싶어서.”나는 다시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엄마, 제 얼굴 자세히 보세요. 엄마 딸 미경이에요. 잊어버리면 안 돼요.”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힘없이 웃으셨다. 그 웃음엔 표정이 없다. 그냥 느낌이 없는 하얀 웃음이다.

기쁨도 행복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미소. 나는 그런 어머니의 웃음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한다. 언젠가 그 웃음도 볼 수 없는 날이 올까봐. 준비도 안 된 상황 속에서 그 날이 너무 급작스레 올까봐. 그런 날이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어머니를 찾아 달려간다.

나는 어제 아침에 어머니의 바지를 여섯 장 빨고, 속옷을 삶고 목욕을 시켜 드렸다. 오늘 아침에는 바지 다섯 장과 상의 두 장을 빨고 속옷을 삶았다. 어머니께서 내가 손빨래 하는 것이 힘들어 보이셨는지 세탁기에 넣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손으로 어머니의 옷을 빨았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빨랫감이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고, 날마다 손빨래를 하면서 힘들게 나를 키웠을 어머니의 마음을 되새겨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전기와 버스가 들어온 시골에서 살았다. 4남매 중 오빠와 언니와 나는 연년생이었고, 어머니께서는 둘씩 벗어내는 기저귀를 날마다 우물물을 길러서 삶고, 냇가로 나가 빨았다고 하셨다. 고무장갑도 없었던 겨울에 꽁꽁 언 냇물의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커다란 대야에 넘쳐나는 기저귀를 빨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손가락이 얼어 감각을 잃고 잘 펴지지 않아도 누가 대신 해 주지 않는 그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던 어머니.

그것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전혀 힘 드는 일이 아니다. 한겨울에도 더울 정도로 난방이 잘 된 아파트 안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지는 집안에서 목욕 시켜드리고 속옷 조금 삶고 바지 몇 장 날마다 빤다고 해서 힘들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은 다 잊고 딸이 동동거리는 모습만 보이는 지 “빨리 내가 가야지.”하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 몸이 송곳에 찔린 듯 통증을 느낀다.

요즘 내 일상의 중심은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를 목욕시켜 드리고 빨래를 하고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바빠서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달려가 식사를 챙겨드린다. 처음에는 그 일이 벅차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두려운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내 곁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가 어느 순간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심장이 조여 올 때가 많다. 요즘은 나날이 늘어나는 치매 인구로 인해 그리 낯설고 놀랄 일은 아니지만 내 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은 슬프고 고통스럽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치매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 65세 인구는 708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8%를 차지했으며 30년에는 24.5%, 50년에는 38.1%로 증가 예상하고 있다. 치매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2030년에는 전체 노인의 10%인 127만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치매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내 가족 중 누군가 치매에 걸릴 수 있고, 나 또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치매환자가 있는 가족들 또한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야 한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찾아보면 유용한 방법들이 많이 있다. 환자 개개인에 따라, 또 가족들의 여건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각 가정에 맞게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적절하게 적용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치매 치료에는 가족의 이해와 인내가 필수적이다. 모든 상황에서 환자를 야단치거나 화를 내고 강제로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족들은 한마음이 되어 환자를 중심으로 생활해야 한다. 치매환자를 정상적인 나이로 보고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가족이 힘들어진다. 가족들은 자꾸만 나이를 거꾸로 먹는 환자의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치매환자의 기억력 상실과 의사소통을 돕고, 정서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에 신경 쓰고 이상행동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와 영양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을 다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인 인간의 감정이다. 인간이기에 때로는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어깨 위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누가 덜어가기를 바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한 순간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키운 것처럼 자식 또한 그 마음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중얼거리신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은을 준들 너를 살까, 금을 준들 너를 살까. 우리 엄마가 밤낮없이   나를 보고 말했는데, 좋은 것은 다 나한테 먹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3 남매 중 막내딸인 어머니가 외할머니는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까. 나는 그 만큼은 못하더라도 어머니를 귀하게 대접해드리고 싶다. 목욕을 시켜 드리고 벗어놓은 옷을 빨고 밥상을 차려드리는 일에 정성을 더 들일 것이다. 어머니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나를 볼 때마다 웃으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아침에 어머니가 속옷 두 장과 바지 다섯 장만 벗어놓아도 고맙다. 속옷 한 장과 바지 두 장을 벗어놓으면 더더욱 고맙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도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겠지만 나는 또 그것에 적응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저 어머니 아버지가 내 곁에 계시고, 날마다 돌봐드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눈부신 새해 아침에 나는 소망 하나를 빌어본다. 봄이 오면 걸을 수 없는 어머니를 위해 휠체어를 준비하고, 김밥을 싸고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들이를 가는 것이다. 벚꽃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눈처럼 휘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것이다. 나는 그 날이 꼭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을 설레며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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