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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8.05.11 18:56
  • 호수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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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광양향교 전교

우리말 통합사전이 절실하다<2> 우리말 사전의 역사

 

 

우리는 이제 통일을 대비하는 막중한 시대에 먼저 취급할 문제가 한민족이 사용할 통일된 사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 필요하고 서둘러야 하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통일된 사전을 만들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5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은 우리말 큰 사전이 만들어진 역사를 살펴보면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말 사전의 시초는 불란서 선교사가 1969년에 들어와 불한사전(佛韓辭典)을 만들고, 11년 후에 한불사전(韓佛辭典)을 만들었다. 그때 우리는 사전편찬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 채 세월만 흘렀다. 이것은 우리말 큰 사전에 관한 광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이고 진정 우리말 사전을 발간한 것은 1947에 시작해 10년 후에 한글학회에서「큰 사전」을 출판해낸 후,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각종 국어사전이 출판되었다. 큰 사전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민족정신 말살정책으로 삭발(削髮)·조선어 사용금지 등 200여 가지의 개혁정책을 수립해 강행했던 것이다.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을 발표해 치안유지범이란 명목으로 요시찰인물을 지명해서 감시했다. 또한 독립 운동가를 체포할 수 있도록‘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을 공포해 식민지 승화정책을 시행했지만 그 목적은 민족말살정책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선일체를 부르짖어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다는 개념을 주입시켰지만 이것은 징용이나 징병을 도모해 전쟁터로 차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총독부에 부임한 일본인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조선어 사용금지운동을 전개했다. 우선 총독부에 근무하는 조선인 관리에게 조선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학생이나 지방관리까지도 사용금지를 강압했다.

학교에서는 조선어과목을 완전폐지하고 철저한 감시를 통해 적발된 일반인은 문초하고 학생은 퇴학을 강행했으며 심한 경우 생명줄인 배급까지 단절시켰던 것이다.

또한 조선어학회사건을 날조하기 직전 조선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켰고 이듬해는 문예지‘문장’과‘인문평론’까지 폐간 조치했다. 그러나 양심 있는 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정체성 확보와 민족문화보존을 위해 국어학 운동과 한글보급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다.

한글학자들은 조선어연구회를 결성함에 있어 민족정체성 확보와 민족정신의 계승을 위한다는 이념으로 출발했고 이는 주시경선생의 영향을 받아 서울의 사립학교 교원과 교육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로 한글의 정확한 법리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주요 회원은 조선일보문화부장 장지영, 보성학교 교사 이승규, 동래보통학교 교사 최현배, 동광학교 교사 이병기 등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연구발표회와 강연 등을 통해 한글연구와 보급운동은 물론 국어학자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 사업은 국가에서 추진해야 할 문제였으나 국권 없는 나라의 형상이 빚어낸 결과였고, 이에 참여한 학자들은 단체의 운영을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 추진해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