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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8.05.18 18:23
  • 호수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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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광양향교 전교

우리말 통합사전이 절실하다<3> 조선어학회의 활동

 

조선어학회는 1940년 훈민정음 발표 48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이날을‘가갸 날’로 삼았다. 다음해 2월에는 국문연구지의 효시인〈한글〉창간호를 펴냈다. 이로부터 가갸날은 한글날로 바뀌었으며 이후 양력사용의 확산과 훈민정음「해례본」의 발견으로 현재의 10월 9일을 한글날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한글〉은 재정난으로 한때 휴간되었다가 1932년 조선어학회 기관지로 계승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조직했으며 본 위원회의 발기인은 108명이었으며, 일본은 이단체가 민족주의 사상을 지녔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학생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앞서 조선총독부가 간행한〈조선어사전〉은 낱말은 우리말이지만 주석은 일본어로 된 것으로 이는 식민조선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을 준비해온 조선어학회는 마침내 원고 조판작업에 착수했다.

이때 일제는 대동아전쟁을 염두에 두고 조선을 신속하게 식민지화 하는 책동을 일삼고 있을 때인지라 민족정통성을 승계하려는 학자들의 이념을 알아차린 일본경찰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르렀다.

전말을 보면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가던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朴英玉)이 기차 안에서 친구와 조선어로 대화(일설, 태극기를 그려 놓고 조선말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인 경찰관 야스다(安田稔)에게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경찰은 함경남도 흥원에 있는 그의 집을 수색하다가 일기장에“일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학교 교사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에서 교직에 있던 정태진(丁泰鎭)이 학생들에게 민족주의를 주입시키고 서울에서 사전편찬을 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그해 9월 5일 정태진을 연행 취조해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단체로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억지자백을 받아냈다. 이로 인해 3.1운동 후 부활한 한글운동을 폐지하고 조선민족, 노예화에 방해가 되는 단체는 모두 해산시키고 나아가 지식인들을 검거할 수 있는 빌미를 갖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1일, 첫 번째로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을 체포해 서울구치소에 구속시켰다가 다음날 함경남도 흥원으로 압송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조선어학회에 관련된 33인이 1943년 4월 1일까지 검거되었다.

사건을 취조한 흥원경찰은 사전편찬에 직접 가담했거나 재정적 보조를 지원한 사람들을‘치안유지범’에 의해 내란죄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때 증인으로 불려나와 혹독한 취조를 받은 사람도 48명이나 되었다.

이때 노산 이은상 선생도 포함돼 있었고 풀려난 후 광양 백운산에 은거하다가 광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현배·이은상·정태진 등 24명이 기소되고, 신윤극 등 6명은 기소유예와 기소유예 의견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이때 옥중에서 취조에 지친 2명(이윤재·한징)은 사망하고 말았다. 이들에게 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종결 결정문에 따라「치안유지범」의 내란죄가 적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1944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9회에 걸쳐 계속되었다. 형은 최고 6년부터 2년까지이며 집행유예와 무죄도 있었다. 아울러 이들이 10년 동안 우리말 큰 사전의 제작을 위한 작업을 해 완성한 것은 400자 원고지 3만 2천여 장과 어휘카드 20만매를 압수당했다. 그러나 천운이 있어 일제가 압수해간 원고는 해방된 해 9월 철도청 서울역 창고에서 찾아내 손상 입은 부분을 다시 정리한 뒤 모두 6책으로 된 책을 한글학회가《큰 사전》으로 발간했던 것이다.

수록한 어휘 수는 모두 16만 4125개나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국어 대사전》은 이처럼 일제의 가혹한 민족 말살정책과 조작, 고문, 수사를 이겨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우리는 해방을 맞았지만 불행하게도 국토는 나누어지고 민족은 갈라섰다. 그리고 73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말씨가 변하고 어휘가 이질화되어 버렸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성인은 물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대들은 통일이 된다 해도 말과 글이 이질화돼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