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10> 시골 살이의 소박한 행복
천방지축 귀농 일기<10> 시골 살이의 소박한 행복
  • 광양뉴스
  • 승인 2018.09.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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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시민기자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벌초를 끝내고 아내와 함께 마트에 들렀다. 명절에 밥상이 허전하면 궁색한 농부의 삶이 탄로 날까봐 형편을 위장하기 위한 지갑을 열기로 했다.

카트를 밀고 아내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농산물에 적힌 가격표를 훑어본다.

헉~! 장난 아니다. 농산물이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 줄 몰랐다.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 했다는 뉴스가 사실임을 확인한 순간,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반찬들을 생각해 본다.

텃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깻잎으로도 몇 가지 반찬이 만들어지고 줄기를 얻기 위해 심은 고구마대를 벗겨 나물을 무치고 매콤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한다.

가지나물과 오이소박이, 시원한 오이냉채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서 빠지지 않고 밥상을 지키고 있다.

양파와 마늘은 귀농 7년차인 금년에 처음 심었는데 예상을 깨고 우리 먹을 양은 충분히 확보 되었다

이쑤시개 굵기의 대파를 심었더니 매직펜 굵기의 요술을 보여주고 시장에서 사다 심은 쪽파는 심은 지 3~4일 만에 뾰족 뾰족 올라와 텃밭 가꾸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막걸리가 생각나는 날이면 부추와 방아잎을 넉넉히 넣은 풋전 몇 장을 뚝딱 부쳐낸다. 비오는 날이 농부의 휴일인데 그때 막걸리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하지만 눈치 빠른 부추도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나풀거리며 막걸리 생각이 나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

여름 과일도 부족함이 없다.

토마토와 엄청나게 달려주는 복수박과 참외는 우리 집을 찾는 분들께 농부의 마음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호박꽃도 꽃이냐’며 조롱하고 못생긴 사람을 호박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시골집 식탁의 가장 인기 있는 채소는 단연 호박이다. 된장국에서는 감초 역할을 하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식감의 나물은 어떤 채소도 흉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 지난 외손자가 좋아하는 단호박과 옥수수는 냉장고를 털어 가는‘좀도둑’인 딸의 몫이 되었다.

며칠 전에 파종한 배추와 무도 산 새 들의 눈을 피해 파랗게 싹을 틔웠다.

이렇게 풍요로운 건강 밥상을 약간의 노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시골살이가 소박한 행복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 날 큰 맘 먹고 지갑을 열기로 하고 밀고 다녔던 카트에는 고등어 3마리와 막걸리 두 병만 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