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11> 이우식 시민기자
천방지축 귀농 일기<11> 이우식 시민기자
  • 광양뉴스
  • 승인 2018.09.20 18:42
  • 호수 7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부에게도, 산짐승에게도 풍요로운 가을 산

알밤 수확이 한창이다. 수확이라 해봤자 쓰임이 다양한 비료 포대를 끌고 다니면서 밤 집게로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집에 가져온 밤은 작은 것과 벌레 먹은 것을 철저히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배송 과정에서 밤벌레라도 나와서 기어 다닌다면 소비자들이 기겁을 하기 때문이다. 골라낸 못난이들은 버리지 않고 황률(깐밤, 밤쌀)로 만들어 팔고 있다.

밤농사처럼 쉬운 게 없다. 밤나무가 있는 위치에 하얀 깃발로 표시를 해두면 헬기로 유기농 방제약을 한번 쳐 준다. 수확 직전에 떨어져 있는 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풀을 베 주면 관리가 끝난다.

조심해야 하는 일도 있다. 나무에 달려 있는 밤송이가 궁금하더라도 절대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봐서는 안 된다.

떨어지는 밤송이에‘눈탱이 밤탱이’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허리를 굽혀 밤을 줍다 보면 등짝에‘툭!’하고 알밤이 떨어지기도 한다. 밤송이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은 운수 옴 붙은 날이다.

수령이 50년 이상 된 밤나무의 높이는 3~40m씩 된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밤송이를 맞을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매년 한 두번은 밤송이 공격을 받고 괴로워하며 가을을 보낸다.

깊은 밤에 밤 산을 다녀가는‘밤’손님도 있다. 멧돼지 가족이 나들이라도 하는 날이면 밤 산이 쑥대밭으로 변해 버린다.

맛있는 옥광 밤만 골라서 먹어 치우는 바람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 넓은 밤 산에 침입 방지용 그물을 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마음을 비웠다.“낮엔 내가 줍고 밤엔 네가 줏어 먹어라 잉”그 놈이 농부의 혼자 말을 알아들었는지 요즘 방문 하는 횟수가 무척 잦아 졌다.

다람쥐처럼 몇 개씩만 가져가면 이쁘기라도 할텐데…

멧돼지가 알밤만 좋아하는게 아니다.

키가 닿는 곳에 달린 단감을 싹쓸이 해 가기도 하고, 굵기가 가는 배나무는 머리로 받아서 부려 뜨려 따 먹기도 한다.

고구마 밭의 고구마가 주먹만큼 커지기를 기다렸다가 뾰족한 주둥이로 싹 갈아엎기도 하고, 고추밭 자투리땅에 심어둔 옥수수를 그놈이 먼저 시식을 하기도 한다. 만나면 혼이라도 내 주려고 벼르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다. 활동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밤 산 근처에 꾸지뽕 열매가 빨갛게 익어 가고 있다. 잘 익은 열매만 파먹는 산 까치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맛이 들기 전에 따오기도 한다.

고라니의 피해는 정말 심각하다. 콩잎과 무, 배추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매실 나무의 여린 순을 좋아해서, 새순이 올라 오는대로 뜯어 먹는걸 방지하려고 고라니 키 보다 높게 그물을 쳐서 3~4 년간 매실 나무 묘목을 가둬 놓기도 했다. 고라니와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날수록 농부의 일거리도 늘어만 간다.

이틀에 한 번씩 밤을 주우러 간다. 내일 산에 가는 날이다.

오늘 밤엔 제발 내려오지 말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