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 일기<15>- 이우식 시민기자
천방지축 귀농 일기<15>- 이우식 시민기자
  • 광양뉴스
  • 승인 2018.11.09 19:00
  • 호수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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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만추(晩秋)의 산골

오늘도 마을 건너 응달이 시끌벅적 요란스럽다. 산 밑에 네 집이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응달’이라고 부른다. 응달 명수 형님 집 마당에 창고용 비닐하우스를 3일째 짓고 있다.

첫날은 호박 하우스를 하시는 익동이 형님께서 파이프를 구부리고 기초를 잡아 주셨고, 둘째 날은 마을 터줏대감 종도형님, 몇 년 전 광양읍에서 살다 옛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 이사 오신 낚시광 상배형님, 술을 엄청 좋아하시면서 마음씨 좋은 형모형님, 부산에서 은퇴 후 귀향을 하신 승두형님께서 비닐을 씌우는데 손을 보탰다.

만능 재주꾼인 유일한 후배 창연이 아우도 늘 형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7년 전 귀향을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면서 마을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든든한 후배다.

집 주인 명수형님은 서울과 광양을 오가며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자주 내려오신다.

마당 한켠에 고추를 심었고 해남에서 고구마 순을 택배로 공수해서 고구마도 심으셨다. 저수지 밑에 있는 밭에는 참깨와 감자, 양파를 심어놓고 재미있게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이다.

언젠가부터 명수형님이 오시는 날은 마을에 살고 있는 깨댕이 친구들과 후배 몇 명이 모여 술판이 벌어진다. 하루 일이 끝나는 오후 4~5시쯤 모여 구수한 사투리에 19금 섞어가며 놀다 보면 응달이라서 일찍 해가 넘어 간다.

어둠에 밀려 강제 해산을 당한 뒤에야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탈탈 털며 일어난다.

다시 서울로 가시는 날까지 거의 매일…

비닐하우스 공사 3일째인 오늘은 강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게 단단히 줄을 묶고 햇빛 차단용 그물을 쳤다. 물이 들어오지 않게 빙 둘러가며 주변 배수로 정비를 하는 걸 끝으로 형님의 숙원 사업인 거대한(?) 공사가 끝났다.

한 시간 남짓 일하고 또 다시 술판이 벌어진다. 오늘은 준공식을 하는 날답게 안주가 푸짐해서 좋다.

종도형님께서 엔데미 고랑에서 도토리를 주워 다 탄력 좋은 묵을 만들어 오셨고, 낚시꾼 상배형님은 문저리(망둥어)회를 맛있게 무쳐서 들고 왔다.

아침 일찍 낚시 가자며 전화가 왔었다. 함께 출조하지 못해 미안 했었는데 혼자 다녀오셨던 모양이다. 댓병 하나가 다 비워질 때 쯤 집주인 명수형님께서 통닭을 두 마리 더 시켰다.

“여그 배쳉이요”

이렇게만 말해도 주문은 끝난다.

“누구집이고 어디로 어떻게 오라”는 말은 필요 없다.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서 척척 배달이 된다.

면소재지에 하나 밖에 없는 통닭집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매일 같은 집 통닭을 먹어도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은 없다. 여 사장님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통닭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 선배님들의 농담이 먼저 오토바이를 반겨준다.

새로운 안주에 또 다시 등장한 댓병. 무섭다. 종이컵에 가득 담긴 술잔을 들었다 놨다 몇 번 했더니 말 술 승두형님이 눈치를 채셨다.

“우식이 니 시방 뭐허냐?”

“아~ 예! 예! 예!”들켜 버린 게 멋 적어서 단숨에 홀짝 비우고 잔을 내 밀어 한 잔을 더 받는다.

저녁 8시밖에 안 됐는데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발자국 옮기기가 조심스럽다. 80 전후의 어른들이 대부분인 마을 골목을 다닐 땐 늘 고양이 걸음을 해야 한다.

잠들어 있는 마을이 깰까봐 소리 안 나게 걷기도 하지만 늦게까지 술 마시고 싸돌아다닌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마을에서 쫓겨날까봐 미리 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감말랭이가 잘 만들어졌는지 상태를 봐 준다는 핑계로 창연이 아우집에 들렀다.

오른손엔 캔 맥주, 왼손엔 안주 역할을 하고 있는 감말랭이를 들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