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묻혔던‘광양 독립운동가 5인’발굴
역사 속에 묻혔던‘광양 독립운동가 5인’발굴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9.01.11 17:50
  • 호수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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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최영근•최한원•최백근•김태수, 5인 독립운동 활약 공개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부서훈 신청‘11월 순국선열의 날에 결정’

정재상 소장“3·1운동 100주년, 잊혀진 항일영웅 각별 예우 필요”

 

1919년 3.1운동 8년 뒤인 1927년 경남 하동에서 ‘제2의 3·1운동’을 주도했지만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광양의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돼 관심을 끌고 있다.

재야사학자인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3·1운동 성격과 유사한 독립운동을 펼친 호남출신 11명의 수형기록을 3·1운동 100년 만에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정재상 소장에 따르면 이번 독립운동가 발굴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하동군지역 미발굴, 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 과정에서 수형기록 발견을 통해 이뤄졌다.

정재상 소장은“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하고 있는‘형사공판사건부’,‘집행원부’,‘일제감시카드’, ‘경상남도 보고서’등의 자료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1927년 하동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동한 13명의 수형기록과 호남출신 11명 등 46인의 항일행적이 담긴 수형문건을 찾았다”고 밝혔다.

▲ 1927년 대구복심법원 검사국에서 작성한 ‘형사공소사건부’ 일부. 김무일 선생 등의 인적사항 및 형량이 적시돼 있다.

문건 내용 파악 결과, 특히 진상면 섬거 출신 김무일 선생이 당시 하동 독립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밖에도 태인동 출신 최영근, 최한원, 최백근, 김태수 선생등 4명의 기록도 함께 발견됐다.

광양시에 확인 결과, 최백근 선생(1913~1961)의 경우 후손이 직접 등록을 신청해 선생의 기록이 유일하게 시에 남아있었으며, 나머지 4사람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취재 결과 최영근 선생의 후손이 현재 태인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백근 선생은 지역언론사에 근무하는 A씨 조부모와 일가인 것으로 확인돼, 근현대사의 아픔이 멀리 있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A씨는“할아버지가 일본경찰에 쫓기는 최영근 선생을 벽장 안에 숨겨주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광양지역 독립 운동가들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 소장은“이런 경우는 후손들이 몰랐거나, 절손(후손이 없음)된 경우, 또는 이주했거나 본인이 후손에게 독립운동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 경우 등을 추측해 볼 수 있다”며“독립운동의 역사적 근거가 확실한 만큼 그분들의 공적을 지역에 널리 알려 귀감이 되도록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 김태수•최한원•최영근 선생 관련 판결문 일부. (1928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정부 서훈 신청 결과는 을사늑약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제정된 순국선열의 날인 오는 11월 17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정 소장은“1927년 하동에서 영·호남 출신 1000여명이 가담한 제2의 3·1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항일영웅들에 대한 예우에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이러한 내용들이 지역향토사에 단 한 줄의 기록도 없어 안타깝다”며“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항일영웅들에 대한 예우에 우리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