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독립운동 주도한 광양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하동 독립운동 주도한 광양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9.01.11 17:52
  • 호수 7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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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최영근·최한원 선생

김태수(金泰守·1898~?·태인동)·최영근(崔永根·1906~?·태인동)·최한원(崔漢元·1905~?·태인동) 선생은 1927년 12월 10일경 태인동에서 조선어로 된 문서에 일제의 불법 감금 폐지와 조선어 사용 확립 조선어 교사 등용 등의 내용을 담은 문서를 광양 일대에 배포한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김무일 선생

김무일 선생(金武一·1905~?·진상면 섬거)은 1926년 12월 강대용(당시 41세), 여국엽과 함께 하동·광양지역 등 뜻있는 인사 100여명에게 비밀리에 연락, 하동 장날을 기해 대규모 일제 규탄 시위를 하기로 했다.

악양 출신 임성필, 노종현을 규탄시위 총 연락책으로 삼고 송우복, 조한식 등을 중심으로 빈틈없는 거사 준비를 진행했다.

광양지역은 당시 22세이던 김무일 선생이 거사일을 하동 장날인 1927년 3월 3일로 정하는 등 직접 나서 거사준비를 진행했다. 거사에 동참하기로 한 지역인사는 광양군 김태수(30)·최한원(23)·최영근(22) 선생을 포함 300여명에 달했다.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되자 다급해진 일본경찰은 무력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선생은 일본경찰과 충돌, 진압 경찰을 폭행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일로 선생은 중심인물 50여명과 함께 일본경찰에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재판에 넘겨져 소요(騷擾)·상해(傷害) 등의 죄목으로 형이 확정될 때 까지 징역 2년에서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최백근 선생

최백근 선생(1913~1961·태인동)은 1931년 일제의 조선 침탈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하동군내에 배포한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진주법원에서 금고 6개월 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