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명동에서
  • 광양뉴스
  • 승인 2019.03.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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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향기
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서울에서 가장 번화가인 명동 한 가운데 서 본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생활필수품은 물론이고 먹는 것 입는 것 온갖 사치품들로 눈이 부시다. 생전 보지도 못한 신기한 물건들이 거리마다 쌓여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눈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과 물건들로 넘쳐난다.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 지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다가는 동행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들의 물결 속에 떠밀려 몸이 움직이는 곳. 나 같은 시골 사람이 가면 어디로 갈 지 몰라 허둥대기만 하는 곳. 그곳이 오늘날의 명동이다.

그런 명동이 50년대는 판자 집으로 꽉 차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층건물들의 숲들로 둘러싸인 곳에 판자 집을 그려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하지만 분명 그런 시대가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명동이 처절하게 울부짖었던 때가 있었다. 그 속에서 꿈을 피워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1950년대는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제자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전쟁이 휩쓸고 가면서 땅덩이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다.

그 속에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생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고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조차도 의심하는 시대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폐허가 되어버린 땅덩이에서 희망을 바란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던 시대였다.

서민들도 물론 힘이 들었지만 목구멍에 풀칠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힘에 버거워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예술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유가 말살된 시대에 살면서 그 울분을 토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글을 쓰고 술을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취하지 않으면 바로 볼 수 없는 세상, 자살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 존재가 상실당하고 희망이 거세당한 몸뚱어리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행복은 나락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절망만이 고개를 곧추세웠다. 낮은 숨통을 조이는 공간으로 변하고 무덤이 되어 목젖을 조였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술을 마셨고, 죽어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절망의 표시와 저항으로 술이라는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50년대는 가난과 파괴가 가득 찼다. 불안과 공포와 폐허와 절망뿐이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린 이중섭의 절망. 전쟁의 허무감과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술을 먹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죽어간 박인환의 좌절. 세상을 뜨겁게 사랑했지만 누구도 그 괴로움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에 자살 할 수밖에 없었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휴머니스트 전혜린. 마시고 또 마시다 피토하며 죽어간 김관식 시인. 뼈에 사무치는 고독이 쌓여야만 시 한편이 탄생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처절한 고독감에 몸부림쳤을까.

1950년 한국은 아직 문화와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가올 풍요로운 사회를 위하여 예민하기 그지없는 촉수를 지닌 채 그들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그렇게 지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삶의 여유가 없을 때 문화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폭탄이 터지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 예술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이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 최초로 욕설을 써서 이런 것도 시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주었던 김수영 시인이 왜 그렇게 자유를 갈망했던가 하는 것도 50년대의 명동을 알면 이해할 수가 있다. 인민군 포로가 되어 끌려가다 다시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가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도 낱낱이 다 해부해주고 있다.

50 년대의 절망이, 가난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피어났던 그의 시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삶의 편린들을 남김없이 느끼게 해 준다.

법보다는 사람의 도리가 우선시 되던 사회, 어리숙함과 인정이 넘치던 사회. 그것에 비하면 오늘날 삶은 너무 삭막하다. 이기적이다. 자신만 존재한다. 남은 있을 수 없다. 그 속에서 현대인들은 고립감을 느끼면서 정신을 말살당한 채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50년대 명동을 안타깝게 그리워하며 아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절망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쳤던 50년대 문인들의 부르짖음을 느꼈기 때문일까. 명동을 돌아서 나오는데 봄 햇살이 자꾸만 옷자락을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