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순흥안씨 고택 운강장
[기고] 순흥안씨 고택 운강장
  • 광양뉴스
  • 승인 2019.05.10 18:35
  • 호수 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사 안영신

광양 진월면 진목길 69-3에는 오랜 세월 마을과 함께해 순흥안씨 고택인 운강장이 있다.

고택 운강장(雲岡莊)이란 안봉호공(1898.3-1988.3)운강이란 () 재실(齋室) 명이다. 집터는 1000평이 넘는 대지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고래등 같은 굵은 기와집이 여덟 동이 있었는데 동네 어른들에 얘기에 의하면 옛날에 마을을 지나가는 ()들이 집을 보고 동네는 동네 한가운데 큰절이 있나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만큼 대단한 집이라 했다.

문간채 문중방 위에 걸려있는 현판은 검정바탕에 하얀 글씨로운강장이라는 함지휘호가 보이는데 이는 당시 요순시절 태평연월로 () 뜻함이며,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뤘던 영화로움은 어딘가 간데없고 세월의 풍화로 인한 고풍스러움만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끌고 있다.

현재 이집에 거주하고 있는 종손(운강의 아들:정주-미국에서 정년하고 고향에 얼마 안됨) 남은 2동이라도 향토문화재로 등록되기를 바라고 있다.

건물들은 지금으로부터 150 전인 1870년경으로 추정 되는데 지리산에서 벌송을 뗏목으로 이동해 바닷물에 절여 집을 지었기에 지금도 벌레 먹은 데가 없다.

당시 집을 지을 수목수 한사람이 도리 기둥 하나를 깎는데 열흘이고 서까래 하나 깎는데 일주일인데 서까래 하나를 4-5일에 걸쳐서 깎은 사람은 아무리 깎아도 부실하게 깎았다하여 품을 주고 돌려보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꼼꼼히 지었다고 전해진다.

운강공의 집안 직계을 들여다보면 광양군지(1983, 914P) 따르면 조선 519년에 걸쳐 광양출신 문과급제자가 8명이 나오는데 한사람이 운강(안봉호) 공의 증조부 안창범(1835-1888)이다.

그는 고종13(1875) 세자책례문과(5 등과) 급제해 승정원 주서, 성균관 전적, 사헌부 지평을 지낸 있고, 아들 윤석(운강의 조부) 공은 통덕랑을 지냈다.

또한 손자(운강의 ) 안경준(1875-1946) 공은 진월면 집강 초대면장(1910-1914) 광양향교 4 전교를 지냈고, 진월초등학교 설립(1926) 설립위원회에서 토지 희사를 권하자 20마지기를 선뜻 기부했으며, 운강공(1889-1985) 일본 와세다 대학(법학과) 졸업하고 공직에는 나가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서울시장을 지냈던 윤치영 (1998-1996) 와세다 대학 동기며 국무총리를 지낸 허정 씨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한다.

윤치영 시장이 1966 서울시장 재직 서울치안감을 맡아달라는 했는데 안나갔다고 전해진다.

한번은 운강공이서울을 갈테니 자네가 서울역으로 나오소하고 서울역에 가니 윤치영 시장이 빨간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을 보고, 운강공이어이 사람아! 촌사람같이 빨간 넥타이 하니 시장이촌사람은 자네가 아닌가!”라는 얘기와 그는 평생 동안 달걀하나 값을 벌어봤다는 에피소드와 같이 고택에 살았다는 인사로 생각되며 필자 역시 운강장을 향토문화재로 등록을 바라는 바다.

 

<외부 기고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