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유적을 찾아서 3] 보성선씨 운산정사
[지역 문화유적을 찾아서 3] 보성선씨 운산정사
  • 광양뉴스
  • 승인 2019.05.24 18:20
  • 호수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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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영신 행정사

진상면 섬거의 배산임수를 보면 배산()으로는 호남의 명산 백운산에서 내려오는 삼정봉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옥곡에서 진상으로 들어가는 밤골재가 있고 좌로는 하동을 넘어가는 높은 매치재가 있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는가 하면 임수()로는 맑은 수어천이 남해안으로 흐르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고관대작이 많이 나온 인물의 고장이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고장이다 보니 보성 선씨 위대 조상이 섬거에 머무르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보성 선씨가 진상에 터를 잡아 오랜 세월과 함께 뿌리를 내린지가 선조들이 광양에 들어온 이후 10대손이 나왔다하니 세거(世居) 어림잡아 300년이 짐작 된다.

운산정사(雲山精舍) 선형국(宣炯國:1922-1998) 공의 이름이다.

운산 선형국공의 당호로 진상면 7대와 11 면장(1945.8-1948.5) 역임했던 서희수 (1903년생) 1940년에 본채와 사랑채를 지어 본채는 살림집으로 사랑채는 양조장으로 20여년을 사용하다가 가사사정으로 인해, 주인 박점자 (前진월우체국장 역임) 시아버지이신 선형국 공에게 팔고 진상면을 떠나셨다한다.

명규 (선형국 둘째아들) 의하면 집을 지은 목재는 강원도 속초에서 벌송 소달구지와 뗏목으로 운반해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는데, 오랫동안 면장을 하시고 양조장을 경영하셨다 할지라도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운반해 이렇게 대궐을 지으신 것은 대단한 어르신이라 생각된다.
 

집을 인수받은 선형국 공은 진월우체국 개국(1962) 우체국장으로 근무하시다가 정년을 하셨고 슬하에는 7남매를 두셨으며, 바로 손아래 동생은 서울국제우체국장 정년 광양향교 44(1997) 전교를 지내신 선형재 공이며, 둘째동생은 광주송원여고 교장을 역임한 성형빈 공이고, 셋째동생 성형기 씨는 교육부 수능평가원장 정년 사립 서울고척고 교장을 역임했다.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 557-25번지에 자자오행으로 서있는 운상정사는 진상면 소재지에서 주택지로 중심지 사방 150m 안팎을 보면, 동으로는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고 서쪽으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고 남으로는 시장() 있으며 북쪽으로는 유서 깊은 섬거초등학교가 있는 택지로서 진상면소재지에서는 어느 택지와도 비길만한 길지라는 생각이 든다.

오간대궐 집의 건축년도는 1940년이며 앞면(가로)15.5*측면(세로)6.5m=107(30) 기둥둘레가 80㎝에 지름이 30㎝인 건물은 지은 지가 갑자를 넘기고 20년이 다됐는데도 전면에 보이는 빼어난 아름다움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자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 박점자 씨에 의하면 진월차동 용암세장을 지은 목수가 운산정사도 지었다고 했는데 용암세장을 1929년에 신축한 진월 3 면장(1917-1919) 안경진 공이 지은 11 후에 운산정사를 지었다는 말이 된다.

용암세장과 운산정사 건물은 광양시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건물로 남녀로 구분하자면 용암세장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 웅장함이 남성적이라면 운산정사는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빗어 낭자(가르마) 여자의 얼굴같이 깨끗하고 단아함이 여성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신시와 차동 건물을 한목수가 지은 건물로 목수의 특징인지는 모르지만 똑같은 폼과 크기로 깎아 만든 공로(퇴마루) 보게 되는데 차동 용암세장은 사랑채에 있는데 신시 운산정사에는 사랑채에 양조장을 했기에 본채에 설치되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며 공로(퇴마루) 한층 건물의 위상을 높여준다.

집주인 박점자 씨는옛날에 시아버님께서 들은 얘기인데 운산정사로 이사를 옮기고 나서는 무엇이든 하는 대로 순조로웠다그때는 식구도 많아 시끌벅적 했는데 현재는 혼자서 큰집을 지키고 있는데, 욕심 같아서는 문화재로 빨리 등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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