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 문화유적을 찾아서 4] 비봉산 송간정
기고 [지역 문화유적을 찾아서 4] 비봉산 송간정
  • 광양뉴스
  • 승인 2019.05.31 18:08
  • 호수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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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신 행정사

백운산 줄기를 따라 도솔봉을 거치고 형제봉을 지나 비봉산과 일자봉(필봉)을 내려오다 보면 비봉산과 일자봉 사이에 옥례봉이 있다.

그 옥례봉은 송간정 배산임수의 ‘배산’일 것 같으며, 임수로는 신촌과 성불사 양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봉강천을 이루어 송간정(松澗亭) 앞을 흐르는 것이‘임수’로 보고, 우제(준모)공은 이곳에다 초막을 짓고 학문을 연찬하고 후학을 가르친 곳으로 짐작된다.

 

송간정(松澗亭)은 이준모(李準模:1888-1971)공의 집이름(堂號)이며 우제(遇齊)는 호(號)이다. 본래 이 자리는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길러내던 서당(書堂)터라 한다.

 

옥례봉을 등지고 앉은 송간정 대청에서 앞을 바라보면 옛날 부현마을에 살았던 신재 최산두(1482)공이 옥룡에 이천후인 서극기 서생에게 글을 배우려 다녔던 가막재가 멀리 보이며 우측으로는 만수된 백운저수제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이 시선을 끌며 좌로는 봉(鳳)의 중심지인 봉강면 소재지가 한눈에 보인다.

 

본정자의 신축이나 개축은 연대는 확실히 모르나 개축할 때 시의 지원이 반영이 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를 보면 정면 3칸에 측면 2칸 내실이 있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돼 있다.

 

좌측 문중방 위에는 송간정, 우측문중방 위에는 청풍헌(淸風軒)이라는 현판 2개가 걸려있으며 뜰(마당)에는‘처사우제이준모기적비’(광양 충효정신 89p 문화원 발간 참조)가 세워져 있다.

 

비봉산에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1854)이 태어났다면 일자봉(필봉)밑에서는 작가 김승옥(1941)을 낳고, 옥례봉 밑에서는 우제 이준모(1888) 공이 태어났다.

 

1970-80년대에 광양에서 관공서 모필을 도맡아 쓰다시피 한 명문사 석정일 씨와 군농협지부 앞 경문사 이경환 씨가 글을 썼는데, 지금은 두분 다 고인이 됐지만 이경환 씨가 바로 우제공의 문하생이라 하며 봉강 지곡마을에 계시는 김경봉 씨도 후학이라 한다.

 

김경봉 씨에 의하면 우제공께서는 자기선친의 묘소를 약 3km정도 오르막의 원거리에 있었음에도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이면 빠지지 않고 성묘 예를 올렸다 하는데, 그 얘기만 들어도 살아생전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1970년대에 전 봉강농협장을 지낸 이수균 씨에 의하면 우제(준모)공이나 근재(돈모)공이 같이 매천황현 문하에서 글을 배웠기에 그 후학들은 우리광양 뿐 아니라 순천 여수지역에서도 많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직계후손들은 백운저수제가 축조되고 난 후에는 마을과 생활터전이 수몰되어 다들 대대로 내려오던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떠났다 한다.

봉황새가 부지런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백세에 얼음병같은 깨끗한 용모를 어찌 달에 흠이 있다 말할 수 있으리

鳳凰飛出勤農門 百世氷壺月有痕

좋은 사책(史冊)을 저울질 하는 것은 강목부요/

하늘도 황량한 산과 물은 한림의 마음이라네

良史權衡綱目賦 天荒山水翰林村

비봉산 밑 유림으로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글귀도 있다.

이 고장 출신 매천황현(1854-1910) 친구로 예측되는 술재 박희권(1851)공은 우리 광양에 근대교육(1907)에 있어 최초로 광양향교에 사립광명학교를 설립 운영한 선각자로 후진양성에 큰획을 그은 어른인가 하면 마지막에는 상봉거연정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쳤다 하는데 우제공도 술재문하에서도 배웠지 않았겠냐는 예상을 해본다.

구한말 어느 지역 인사들과 달리 비봉산 밑 선비들은 후진양성을 위해 높은 교육열로 뿌리를 내린 거연정 술재 박희권(居然亭 述齋朴熙權), 송간정 우제 이준모, 옥천정사 근재 이돈모(玉泉精舍 謹齋李敦模:1888) 이러한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봉강면 봉달리368(수몰) 완재 박현모(1880: 황현제자) 공은 양파정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시며 유학과 시문에 평생을 바친 분으로 희양십경을 지으셨으며 그 중 봉강면에 관한 시문을 보면

[文星曉雪 (문성요설일자봉의 새벽눈

文山南出最璘洵(문산남출 최린순) 문성산이 남쪽으로 솟았는데 가장 우뚝하고

曉月蒼蒼霽後新(효월창창 제후신) 새벽달빛 창백하게 개인 뒤에 새롭구나

懷古人生閒不寐(회고인생 할불매) 회고하는 인생은 괜히 잠 못드는데

故留積雪起精神(고유적설 기정신) 쌓인 눈을 일부러 남겨 정신 들게 하는구나]

라는 시구가 전해오듯 비봉산 아래 우재 이준모공을 비롯 그 유림들이 남긴 자취들이 오늘도 광양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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