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 자리
아내의 빈 자리
  • 광양뉴스
  • 승인 2019.06.28 19:10
  • 호수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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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귀농 일기 [23]
이우식 시민기자

매실수확이 끝났다.

200여 그루의 나무에서 꽤 많은 매실을 땄는데도 통장에 입금된 돈은 실망스런 수준이다.

주변에 방치해 둔 과원이 늘어나면서 병충해에 쉽게 노출된 나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비용도 매년 늘어만 가고 있다.

“지가 처먹은 밥값(퇴비와 비료, 농약)도 못 하는 놈들”이라며, 매실나무를 원망을 할 때 마다“말로만 하지 말고 제발 좀 베버리세요”라는 아내의 핀잔이 따라 붙는다.

귀농 첫 해에 심은 나무들이 팔뚝 굵기만큼 커서 점점 수확량이 늘어나고 있어 포기를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매실 수확이 끝나는 날, 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다며 힘들어 하던 아내가 병원을 찾았다.

감기 몸살에 체력 저하가 원인이라며 수액을 맞고 회복 될 때까지 당분간 푹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3월 말부터 두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고사리 산을 오르내렸던 일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바쁠 땐 누가 밥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집안일까지 하는 게 힘들다는 걸 강조 하던 아내의 작은 체구가 방전 돼 버린 것이다.

농사일과 집안 일, 90이 다 돼 가는 친정 엄마 모시는 일까지 척척 해 내며 잘 버텨 왔는데 매실 수확이 끝나고 판매 금액이 입금된 통장을 보는 순간 온 몸의 세포가 한꺼번에 파업을 시작한 것이다.

늘 함께 하던 농사일을 며칠째 혼자 하고 있다.

오늘은 태풍급인 강풍에 고추나무가 쓰러져 가는 것을 구하기 위한 줄 치는 작업을 하고 왔다.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한 액체가 얼굴에 범벅이 돼 간다.

‘농사 일이 적성에 맞다. 시골에 사는 게 마음이 한 없이 편하다. 시골에 사는 우리가 노모를 모시는 게 당연한 거다. 몸이 허락 한다면 70세까지만 이 일을 해 보자. 하루 일과 끝나고 마주 앉아 시원한 막걸리나 맥주 한 잔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냐.’등등 농사일을 하기 싫어하는 아내를 달래기 위해 수 없이 많이 했던 말들이 가슴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는걸 알기나 할까.

예초기를 짊어지고 풀을 베느라 늘 팔목이 시큰 거리고, 무거운 농산물 운반 상자를 들어 올리고 내리느라 허리가 편할 날이 없는 몸은 이미 기상청이 되었다.

뼈마디가 욱신거려 하루쯤 쉬고 싶을 때도, 전 날 마신 술의 숙취가 남아 있는 날에도,‘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이라는 속담에 공감 하는 날에도, 비에 젖은 솜뭉치 같은 몸을 일으켜야 하는 아침이 야속할 때가 있다.

스스로 선택한 삶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지만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

비에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고 저녁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부터 꺼내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여러 날을 똑 같은 고민에 빠진다.

‘국밥과 짜장면은 지겹도록 먹었으니 차라리 라면을 끓이자’라면이 끓는 동안 김치와 젓가락을 준비하고 계란도 하나 꺼낸다. 소주잔을 챙기며 아내의 하루를 생각해 본다.

그녀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날...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