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 내 바람은 내게로 온다
[독자에세이] 내 바람은 내게로 온다
  • 광양뉴스
  • 승인 2019.08.09 18:43
  • 호수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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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시인

날이 막 시작한 첫 새벽에 카톡으로 사진이 들어온다.

올 여름 휴가를 제주도로 간 지인이 붉게 떠오르는 뜨거운 일출 사진을 찍어 신비로운 기운이 사라질까 급히 보내온 것이다.

“성산 일출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왔노라”고“제주도의 좋은 기운을 받으라”며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일출 사진을 실시간으로 전송한 것이다.

저 일출이 어제 대지를 부글부글 끓여 놓고 서산을 넘어간 해 인가 싶을 정도로 태양은 5월의 작약꽃처럼 맑고 고귀한 자태를 뽐낸다.

곱게 피어오르는 일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펄펄 끓는 열대야에 거칠게 몸부림 친 밤의 장막이 찬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 쓴 듯 일순간에 거두어진다.

비록 사진으로 보고 있지만 워낙 선명해서 한참을 일출속에 빠져들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나를 오롯이 제주도 성산일출봉 지인의 옆 자리에 옮겨 놓아 본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서 왔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내가 내게 물었다.

‘나는 나이고, 나는 내게서 왔고, 나는 내게로 가고 있다’내가 내게 답했다.

2019년이 시작되고 정신없이 내달린 시간들을 일출속에 잠시 내 던지고 긴 쉼 호흡을 해본다.

얼마전 서울 시내의 카페에 여유롭게 앉아 출근길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강남 거리는 사람들의 무리로 발 디딜틈이 없다.

어떤 사람은 바람을 가르며 신들린 듯 뛰어가고, 어떤사람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왜 바람을 대하는 속도가 다를까!

오늘 이 순간 이라는 시간과 강남 거리라는 장소에 공존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출발과 도착 장소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일거다. 거기다가 도착하는 시간 차이도 있을 것이니 약한 바람을 쎄게 맞을수도 쎈 바람을 약하게 맞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각자의 속도에 맞춰 유효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분명 어디서 왔고 어디론가로 가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순간 공유 했을 뿐 각자의 시간으로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리면 나의 존재감과 정체성 또한 놓칠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옆 사람이 뛰어가면 덩달아서 뛰게 되어 내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삶의 리듬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꼬이게 될 것이다.

해가 바뀌는 1월 1일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면서 신년 다짐을 했듯이, 기회가 된다면 한달에 한번 정도 일출을 보면서“내가 누구인지, 지금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묻는다면 지금 걷고 있는 발걸음이 내 리듬에 맞게 잘 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수평선 넘어 온 붉은 해는 알고 있을까!

내가 어디로 가는지 지평선 넘어 가는 붉은 해는 알고 있을까!

내 리듬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내가 가는 길이 내 삶이고 목적지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시간, 서울의 거리와 성산 일출봉에 같은 해가 떠올랐다.

<바람>

어디서 왔냐고 묻거든

붉은 해 수평선 넘었다 해라

어디로 가느냐 묻거든

붉은 해 지평선 넘는다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