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강 당저마을 조규홍 이장 “주민들이 행복해지면 그 뿐…”
봉강 당저마을 조규홍 이장 “주민들이 행복해지면 그 뿐…”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9.08.23 19:17
  • 호수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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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이장 맡아 주민 행복지수↑
‘고향’ 가지 않고 봉강에 정착

20여년 간 붓글씨 써온‘붓쟁이’
어르신의 상처, 그림으로 치유
작품모아‘할머니 미술전’도 열어
조규홍 봉강면 당저마을 이장.

조규홍 씨는 봉강 당저마을 이장이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1979년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입사해 1986년 광양제철소로 왔고 금호동 주택단지, 중마동을 거쳐 봉강 당저마을에 정착했다. 먼 포항에서 고향과 좀 더 가까운 광양으로 온 그가 막상 고향으로 가지 않고 봉강에 정착한 이유는 30여년간 광양에 살면서 직장 안팎에서 맺은 좋은 인연들 때문이었다.

조규홍 씨는 최선을 다해 삶을 일궈왔고 경제적인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꼼꼼한 준비를 하면서도 작업복이 몸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표현할 수 없는 갈증에 힘이 들었다.

2014년 6월, 35년 긴 직장생활을 무사히 잘 마무리하고 작업복을 벗은 조 씨는 이제 정말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고, 살 곳을 물색하다 당저마을을 선택했다.

좋은 집이 나왔다는 말에 확인도 하지 않고 집을 계약, 2009년 6개월 만에 열쇠를 받아 이사를 왔다. 11년 당저마을 주민으로 살면서 5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2009년 이사를 온 후 2014년 퇴직할 때 까지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오고 주말에는 교회를 가고 하다 보니 동네에 살긴 살았지만 동네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당저마을은 그저 조규홍 씨의 베드타운이었고 은퇴 후 평온한 삶을 누릴 보금자리 일 뿐이었다. 스스로를‘붓쟁이’라 말하며 집 한 켠에 마련한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서 책을 읽고 20여년간 써온 붓글씨를 쓰며‘자신만을 위한 삶’을 조용히 누리고 싶었다.

그런 조씨가 5년째 이장을 맡았고, 어떻게 하면 당저마을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면서 또 열정을 다하는 이유는 뭘까?

마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쭈뼛 쭈뼛 지내던 낯선 외지인 조 씨에게 주민들은 식사를 초대하는 등 주민들과 쉬이 친해질 수 있도록 먼저 마음을 열어 주었다.

조 씨는 그렇게 당저마을의‘진짜 주민’이 되었고 주민들은 조 씨에게 이장을 맡아달라고 했다.‘굴러온 돌’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받아 준 주민들은 평소 이웃과 잘 지내는‘젊은’조규홍 씨를 낙점, 이장으로 추대했다.

조 씨는“첨에는 거절했다. 이 곳에 와서 살려고 마음먹은 이유가 붓질에 집중하고 집으로 찾아오는 좋은 인연들을 반기며‘오로지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며“다시‘나’를 밀쳐두고 다른 일에 몰두하기가 싫어서였다”고 했다.

이장이 된 조규홍 씨는‘뭘 해야 할 까?’고민하다‘약자 중심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마을의 약자는 연로한 어르신들, 00떡, 00떡...이름이 잊혀진 채 평생‘무슨 무슨 댁’이라고 부르는‘택호’가 먼저인 어르신들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지금은 어르신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 일을 보기 시작하면서 어르신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됐다.

조 씨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태어나 고생을 넘어 모진 가난을 친구삼아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마음속에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다.

‘당저마을지도그리기’라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신청, 예산을 지원받아 강사를 초청하고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처음엔 서로의 그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적하고 간섭하는 등 불편하고 산만한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칭찬하며‘행복하다. 마음이 맑아진다’고 입을 모았다. 조 씨도 그런 할머니들을 보며 덩달아 행복했다.

이제 할머니들은 상처도 치유됐고 ‘화가’도 되었다.

조 이장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50여점을 모아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조 씨는 당저마을 지도그리기 공동체 사업 외에도 2016년부터‘박힌 돌, 굴러온 돌, 굴러올 돌, 삼돌이 축제’를 열어 원주민과 화합하고, 들어와서 사는 사람, 앞으로 들어 올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마을주민들이 모여 마땅히 담소를 나눌 공간이 없어 면사무소 앞 작은 도서관 안에 무인 마을카페도 마련했다. 이 카페에 75인치 대형 티비를 설치하고 주민들에게 영화도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봉강저수지 인근 봉당리 3개 마을 주변에 벚나무를 심고, 칡넝쿨로 덮혀있던 마을 앞길을 예산을 지원받아 시멘트로 포장을 했고, 최근 마을주민이 모두 나와서 골목길 건강걷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조 씨는“나이 50이 넘으면 가방끈도, 가진 것도 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속에 무엇을 가졌느냐에 따라 겉으로 나타나는 결이 다르다”며“하지만 오랫동안 그걸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원생활이든 귀농,귀촌 생활이든 시골에서 살려면 그 마을, 그지역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눈높이를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규홍 씨의 이러저러한 활동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잘한다, 수고한다는 말도 듣고 있지만 조 씨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다. 이름나는 것도 관심 없고 그냥 그저 봉강 당저마을이 좋아지고 마을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이장은 물질문명에 대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철학과 같은 인문학인데 그것이 부족하면 세상의 바퀴가 어긋날 수가 있다고 말하는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회과학, 철학 등 인문독서를 즐기는 ‘붓쟁이 이장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