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재심 판결‘첫 무죄’…72년 만에 받은 사과
여순사건 재심 판결‘첫 무죄’…72년 만에 받은 사과
  • 이정교 기자
  • 승인 2020.01.23 16:49
  • 호수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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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쓰고 체포 22일 만에 사형
“故 장환봉‘내란죄’증거 없어”
지역정가·시민단체‘판결 환영’
특별법 제정·명예 회복‘필요’

여순사건으로 사형된 민간인에 대한 법원의 첫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각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주인공은 당시 29살 철도기관사였던 故 장환봉 씨로 체포된 지 22일 만에 사형됐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 때문이다. 민간인 희생자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은 72년 만이다.

이와 관련 지난 20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에서 여순사건 재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김정아 부장판사는“사법부의 구성 인원으로 이 사건에 위법한 공권력이 있었음을 확인하며 무죄를 선고 한다”며 “여순사건 희생자들 명예회복을 위해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장환봉 씨는 좌익·우익이 아닌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이라며“70년이 지나서야 잘못됐다고 선언한 것에 사과 드린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재심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장 씨의 딸 장경자 씨가 지난 2013년 재심을 청구한 이후 지난해 3월 재심이 결정됐다. 사형 당시 판결서가 없어 검찰이 공소사실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기록은 호남지구계엄사령부가 작성한 판결집행명령서 뿐이라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이견이 분분했다.

이에 재심대책위는 당시 신문기사, 외신 탐사보도, 국회속기록, 판결집행명령서 등을 찾아내‘여순항쟁과 군법회의의 실체’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또한 각종 설명회와 학술대회는 물론 검찰의 공소 사실에 반박하며‘민간인 군법회의 이유’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와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는 호남지구계엄사령부가 작성한 판결집행명령서가 포괄적인 판결문이라는 논거를 얻고, 검찰의 무죄 구형, 재판부의 무죄 판결의 결정적 자료가 됐다. 아울러 함께 재심이 청구된 나머지 2명은 재심을 청구했던 유족도 사망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재심대책위는“당시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받은 이가 최소 3000명에서 5000명”이라며“불법·위법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여순사건의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정가와 시민단체도 이번 무죄 선고를 환영하고,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전남도당은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진실의 일부나마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법원의 최초 무죄판결을 환영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예회복에 길이 열렸다”며“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양시민단체협의회도 같은 날 논평에서“특별법 제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역사의 길을 함께 걸어가겠다”며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해 열렬히 환영하고, 재심대책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재심 소송 대리인을 맡았던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당시 사망한 다른 피해자들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재심 청구를 해야 한다”며“사실 가장 큰 피해지는 광양인데 많은 사람들이 각별한 문제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