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백운암의 샘
[기고] 상백운암의 샘
  • 광양뉴스
  • 승인 2020.05.08 17:10
  • 호수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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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신
국사편찬위원회 광양시사료조사위원
안영신 국사편찬위원회 광양시사료조사위원

백운산은 광양사람들의 기상(氣象)이다. 뿐만 아니라 전남 동부권에서는 중국의 태산 같은 존재이다.

이 백운산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벌을 힘차게 달려와 호남정맥을 완성하고 섬진강550리 길을 갈무리한 명산이다. 명산에 명찰이 있다 했다. 그러기에 백운산에는 상백운암과 밑에는 백운사, 그 밑에는 용문사가 있다.

필자가 사무실에 다닐적 만 해도 늘 1년에 한번 씩은 직원들과 다녔었는데 정년을 하고서는 마음만 있었지 기회가 없는데 작년(2019년) 봄에는 신재 최산두 선생 학사대에 볼 일이 있어 들러보고 나온 차에 백운사를 들렸다.

정륜스님과 중식을 함께하고 상백운암으로 출발해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경내로 들어서자‘걷는자의꿈(정다임 광양시청직원 2019계간문예 p.214)’에 있는 신비스런 ‘바위얼굴’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장엄한 절벽바위를 쳐다본 뒤, 뒤돌아서서 앞을 내려다 보니 조망권의 시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광양, 순천, 벌교, 고흥... 그러기에 선각국사 도선(827-898)은 1100여년 전에 여기에다가 추춧돌을 놓지 않았을까하는 생각과 필자 역시 상백운암을 자주 들리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 조망권과 천년 묵은 샘물에 있는 것이다.

이런 사찰을 두고 마음은 자주 들리고 싶으나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은 평소 친분이 있던 시청문화재팀장(이규춘)에게 언제 상백운암에 갈 기회가 있으면 같이 동행을 부탁한 것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 6시경에 옥곡 선유마을 고속도로 굴 박스에서 만나서 팀장 승용차로 출발한 것이 6시 50분 쯤에 상백운암에 도착했다.

시내권이나 들녘에는 벌써 푸른 잎새가 반쯤이나 형성되는 것 같았으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겨울 보내는 것을 아쉬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싹을 틔우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얼마 전에 상량식을 가졌다기에 상량문을 보고 싶어 법당 안으로 들어가 위를 쳐다보니 내가 쓰는 상량문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정륜스님이 계셨더라면 반가워 하셨을텐데’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스님이 거쳐하시던 인법당(人法堂)은 사가에서 하는 말로 “나간 집”처럼 초라해 보였으며 경내 역시 법당신축과 선각국사 도선이 수행하셨다는 수행처 중건공사로 인하여 난장판이었다.

상량문을 보고 주위를 살펴보는 사이 아침 일곱시가 되자 법당을 세우는 일꾼들이 일과를 시작하는데 이규춘 팀장이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사이 작년에 마시고 갔던 그 샘가에 가서 정중히 합장 예를 올리고 영험하다는 도선이 마셨던 그 천년샘의 물을 일년 만에 마시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삼정기(봉황, 여우, 돼지)를 안은 백운산에 자리한 상백운암의 백운(白雲)이란 말은 ‘하얀구름’이란 뜻으로 불가의 탈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백운이란 용어가 불가와 이연이 있었기에 그먼-옛날에 도선은 이터에 선(禪)란 기둥을 세운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므로 인하여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그 불심을 이어받고자 오늘도 옥룡면 동곡리 용문동(골) 밑에서는 요란한 망치(용문골:도로확포장)소리를 내고 위에서는 법당을 건축하느라 여념이 없다. 새로 짓는 법당(대웅전)은 서향을 보고 짓는다.

그리고 법당 좌측으로는 인법당이 있고 우측으로는 1950년대에 중건한 목조 함석건물 수행처가 있었는데 그 건물을 이번에 헐고 다시 중수한다.

법당 좌측에 있는 인법당은 2008년도에 신축을 하였는데 금년 하반기쯤에 단청을 올린다하며 법당은 15~6평 정도의 규모로 맛배형지붕 겹처마로 신설하고 수행처는 7~8평 규모로 맛배형 홋처마로 중건한다.

그리고 경내로 들어오는 곳에는 종전 오솔길이 있으며 새로 개설되는 임도길도 있는데 이 길은 인법당 왼쪽에서 들어오는 폭 4m정도의 임도길이 신설된다.

이렇게 본 공사가 순조롭게 된다면 5월말이면 경내건물이 준공 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종전에 계시던 정륜스님의 수년에 걸친 애환 서린 숨은 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준공을 목전에 두고 순천시 서면 청소골 정혜사로 선임돼 가신 정륜스님께서는 말씀은 없었지만 많은 아쉬움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