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옥실장(옥곡시장)
[기고] 옥실장(옥곡시장)
  • 광양뉴스
  • 승인 2020.07.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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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전 광양향교 전교

오늘은 옥실장이구나. 장날은 매월 4·5일자가 들어가는 5일시장이다. 옛날(舊) 옥곡장은 현재 장동교 하단부에서 삼각로 신호등까지 큰길양편과 장동리 입구도로 좌우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300여m 아래 독메(똥매)라는 위치에 임시파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곳에 보(洑)가 있었고 만조 때가 되면 배가 왕래할 수 있는 편리한 곳이었다. 거래 물목은 화목과 김발(해태건조 발)이 주였다. 이곳에 일시 파시가 형성된 이유는 배를 이용한 장꾼은 주로 태인도·금호도·길호·와우 지역주민이 장을 보는 시간이 30~40분이기 때문에 시간단축과 운반거리를 줄이는 편의성에 있었다.

시장의 기능은 사람이 모여 물건을 거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데 있다. 특히 도서 주민들은 시장을 이용치 않으면 생활의 불편이 심각했기 때문에 필수 요건이었고, 육로가 불편했기 때문에 물길을 이용하는 배(船)가 운반수단이었다. 옥곡시장은 물때에 따라 한때 옥실옥실 한다 해서 옥실장이라 불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옥실이란 명칭은 기록과 구전에 의하면 옛날부터 땅이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여 구슬옥(玉)자와 고을 곡(谷)자를 써왔다. 그런데 선인들이 부르는 말은 옥실·옥금뜰·옥곡원·옥실장 등으로 불러졌고 이 지명이 문헌에 나타난 것은 고려 때로 보고 있으나 더 상세한 역사는 생략한다.

그리고 지역문헌에 처음 기록된 것은 1760년 편찬된 여지도에 의하고 있다. 일반적인 시장의 역사는 장구하다. 전국적으로는 고려 때 이전부터라고 하니 군현(郡縣)에는 이조 중종 때 가장 번성했다. 광양지역 5일시장도 500년이 넘었는데 이것은 경국대전과 임현경제지에 근거하고 있다.

지금의 옥곡장은 1962년 옮겼던 것이다. 그러면 왜 이설하게 되었는가. 당시 구 장터의 여건은 지대가 낮았는데 혁명정부에서 식량자급을 위해 옥진들 간척사업을 추진했고 그에 따라 장동저수지를 축조하게 되었다.

또한 경전선 개설을 추진 중에 있었으며 인구증가로 장소가 협소했고 여름 장마기에는 질척거렸고 겨울에 눈이 오면 짚신을 신고 장에 다니기가 불편했고, 수해위험이 급박했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이설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해서 시장을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추진하게 되었다.

다만 시장 소비주체는 노하주민과 골약동 일부와 도서민이 대부분이었는데 시장을 이설하면 그분들은 이용이 엄청 불편해 이용자가 감소할 것을 염려했으나 피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부지를 물색하던 중 현재의 위치인 신금리 신기마을로 선정됐으며 당시 면장은 서병구였으나 사정에 의해 사임하고 김한두 면장이 부임했다.

추진위는 정용래 전 면장을 중심으로 10여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재원확보가 큰 문제로 당시 형편은 군에서 지원할 여건이 못돼 스스로 자금을 확보하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예정부지 2200평(안봉호 800평·김예모 400평·서병화 600평·서한충 400평)에 시장 이설을 추진하는데 안봉호는 매입가의 반 정도로 양도해 주어 큰 도움이 되었고, 또한 추진 중인 경전선을 개설하는데 부지 180여 평이 편입됐기 때문에 보상비를 수령해 자금 확보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구 장터 부지매각은 이은식 전 사설우체국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분의 도움으로 새로운 부지 매입이 끝나고 보니 당시 장터예정지는 늪지대로 매립공사를 해야 하는데 자금 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현역 군수차관이던 광양읍 출신 김종호로부터 군 장비를 지원받아 매립을 완성했다. 그분의 지론은“애향심이 없으면 애국심도 없다”는 평소 애향심의 지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장시가 조성되었으며 1962년 말 이전해 개업을 했다.

장동다리 개통 기념(옛 나무교)

장동교는 신작로(新作路)가 개설되고 나무다리(橋)가 설치되었으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다리는 3번째인 셈이다. 나무다리 설치시기는 광양읍에서 다압면 신원까지 도로가 개설되고 난 후 섬진다리(일명 하동다리) 개통식은 1935년 7월에 개통했기 때문에 그시기로 추정해 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장도 5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고 보니 현재의 시장도 배수가 불량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장날에는 교통체증이 심각했으며 도로 폭이 협소하여 차량의 왕래와 장꾼의 통행이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2009년부터 옥곡시장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당시 시의원이던 장명완 의원이 중심이 돼 추진위를 구성하고 예산을 확보했지만 도로에 편입할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고 시간이 갈수록 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증액되어감에 따라 애로사항이 누적되었다.

그러나 도로확장부지가 마련됨에 따라 광양시에서는 막대한 예산전액을 지원함은 물론 시전과 난전을 구분해 설계를 완성하고 점포를 철거하고 건축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기간이 무려 5년이 소요되어 2014년 12월 19일에 옥곡시장은 현대화사업이 완료되고 개장식을 갖게 되었다. 다만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옥곡시장 노래를 완성하지 못내 아쉽다. 삼각지점에 수립된 표지석에 음각된 내용인 옥곡장 예찬과 시장연혁은 필자가 찬한 것이다.

이것은 옥곡장 노래를 고 서승일 작곡가에게 부탁해 작사 작곡을 하고자 했던 기본 자료인데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기념한 것이다.

점포의 신축과 도로가 정비되어 현대적인 시장으로 활성화로 번성되고 있으니 더욱 발전될 것이다. 다만 시장의 연혁은 연구적 사료적가치가 충분하니 불원간 출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