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골목길 풍경 - 무익함의 가치를 발견하다, 다섯번째이야기 -
[기고] 골목길 풍경 - 무익함의 가치를 발견하다, 다섯번째이야기 -
  • 광양뉴스
  • 승인 2020.09.18 17:53
  • 호수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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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우리 아파트 울타리 계요등 옆을 지나는데 평소와 다르게 진한 구린내가 난다. 위기를 느낀 계요등이 내보는 방어물질로, 일명 독가스라고 할 수 있다. 울타리 계요등 곳곳을 살핀다.

역시나다. 작년에도 같은 곳에서 만난 적 있는 벌꼬리박각시 애벌레가 열심히 먹이 활동 중이다. 크고 오동통한 대부분의 박각시 무리 애벌레들에 비해 작고 귀엽다.

독한 방어물질을 가진 계요등의 전략 때문에 계요등 먹기를 꺼리는 곤충들이 많은데 녀석의 조상들은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해 먹이식물로 선택했다. 경쟁자가 적기에 적응만 하면 그 이후의 삶은 덜 고단할 수 있다는 판단.

이 울타리 계요등에서 벌꼬리박각시 애벌레를 4마리나 만났다. 1마리는 종령 상태로 보였는데 다음 날 사라졌다. 번데기 만들러 갔기를 바라본다. 또 한 마리는 아직 어린 애벌레였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머지 2마리는 잘 먹고 잘 싸면서 잘 자라고 있다.

벌꼬리박각시 애벌레에 꽂혀 있는데 왕사마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반가워서 생각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런데 매서운 발톱 공격을 해온다. 순간 엄청 당황스럽다. 숲에서 논지 2년째, 손 내미는 내게 대놓고 제대로 된 공격을 한 곤충은 녀석이 두 번째다. 작년에 장수풍뎅이와 달팽이를 친구로 주선한 적이 있다. 데면데면하던 장수풍뎅이가 갑자기 달팽이를 덮쳤다. 순간 놀라서 녀석을 맨손으로 잡다가 발에 돋은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피가 났다. 생김새와는 달리 주로 참나무 즙을 먹고 살기에 순할 거라는 착각을 한 나의 실수였다.

녀석의 공격을 받고 그냥 물러나기 뭐해 장난을 좀 치며 놀았다. 내 입장에서는 장난인데 받아들이는 왕사마귀 입장에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좀 흐르자, 내게서 공격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내미는 내 손바닥으로 선뜻 올라온다. 이걸로 충분하다 싶어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버스 안에서 사진으로 담은 거꾸로 매달린 벌꼬리박각시 애벌레와 독특한 얼굴을 한 왕사마귀 얼굴을 들여다본다. 최근 담양에코센터장인 송국 선생님의 강의에서 사마귀의 특징을 들은 뒤로 역삼각형으로 배열된 3개의 홑눈을 집중적으로 찍는다. 사마귀의 역삼각형 홑눈 중에 위쪽 2개의 눈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향하고, 아래 1개의 눈은 정면을 향한다. 최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진화한 눈이다. 게다가 1만 개 정도의 낱눈으로 된 2개의 겹눈까지 있으니 사냥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눈이다. 비록 날개가 퇴화되어 비행능력은 떨어져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을 돌아돌아 걷는다. 그러다 골목 텃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작은 느릅나무에서 물결박각시 애벌레를 만난다. 통통한 배 옆선 줄무늬에 하얀색 멋진 돌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찍힌 사진을 유심히 보니 돌기가 아니라 기생의 흔적이다. 기생곤충의 번데기방인 하얀 고치가 100여 개나 된다. 녀석의 몸속에서 기생하다 번데기 만들 때가 되자 몸을 뚫고 나와 그 몸에 다시 고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우화까지 마쳤는지 고치 뚜껑이 열려 있다. 욘석은 지금껏 누구를 위한 삶을 산건지. 그래도 아직은 통통하다. 그런데 6시간쯤 후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보니 역시나 몸이 반쪽이 되어 있다. 아마도 오늘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

사무실로 가는 길 중에 제일 먼 길로 걷는다. 걷다 하나로마트 화단에 심은 개나리에서 열매 몇 개를 발견한다. 개나리는 종자 결실률이 낮아 열매 보기가 쉽지 않은데 무지 반갑다. 실은 살면서 처음 본 개나리 열매다.

다시 걷는다. 그러다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을 피운 진득찰을 만난다. 꽃이나 열매를 둘러싼 싸개잎에 끈적거리는 액을 분비하는 샘털이 잔뜩 묻어 있어 옷이나 동물 털에 찰싹 달라붙어 붙여진 이름이다. 작지만 자세히 보면 국화과 집안 꽃답게 예쁘다.

최근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 많아 산에 있는 숲으로 드는 시간이 줄어서 답답했다. 그런데 내가 뭘 착각한 것 같다. 도시의 골목골목길이 모두 숲이 될 수 있음을 잊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의 사람종이 우점하고 있는 생태계의 일부다. 사람종의 생태적 지위가 너무 견고하지만 도시의 가로수, 골목길의 좁은 풀밭, 텃밭에 깃들어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도 만만치 않다. 자본주의식 경제 개념을 벗어난 무익함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기생곤충에 기생당한 물결박각시 애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