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윤동주 백일장 금상작(광양시장상)] 존재의 무게
[제13회 윤동주 백일장 금상작(광양시장상)] 존재의 무게
  • 광양뉴스
  • 승인 2020.09.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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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결 광양백운고 3학년 6반

꿈이 무겁다. 어린 나에게 꿈의 존재란 살아가는 힘이었다. 선생님, 작가,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원까지. 나를 달리게 하고 뛰게 하는, 눈앞에 보이는 명백한 목표였다. 미래를 생각할 때면 중력이라도 사라진 양 훨훨 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고3이 되어서, 그것도 2학기가 시작되는 지금 뚜렷하던 표지는 신기루마냥 허망해졌다. 질주해왔던 모든 피로가 덮치며 나를 주저앉게 했다. 현실은 꿈의 무게를 늘렸다.

18살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보람찼다.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 꿈을 이루어줄 학교에 가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결국 고등학교생활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의 신분에서 그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주어졌으니 성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상장이나 점수 등으로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나 19살부터는 달랐다. 학교에서 쌓아온 실적의 기록은 끝났고 어디에 활용할 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현실을 직시할 때였다. 부모님께선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 가서 이길 수 있겠어? 거길 갈 수는 있겠어? 취업은 되겠니?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안전하지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 취업을 장담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의 걱정은 타당했다. 이제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나를 짓눌러왔다. 한 번은 이 짐을 털어내고 어른들의 말과 같이 편하고 경로가 확실한 직업으로 틀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 내 어깨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상상에 빠지며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수해복구 봉사를 제안했다. 뉴스에서 접했을 때 가야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어차피 공부도 안 되었기에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가 맡은 일은 구호 물품의 기부자, 품목, 수량 등을 적은 뒤 같은 품목끼리 모으는 것이었다. 단순한 노동은 복잡한 마음을 한층 편안하게 해주었다. 물론 몸은 더 힘들어졌다. 택배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음료수, 전자제품 등 무거운 물건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자 숨이 차고 손바닥엔 열이 올랐다. 마스크 안은 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상자는 무겁고 몸은 아팠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박스에는 글이 적어져 있거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더운 날에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피해복구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등등. 아, 내가 지고 있는 것은 도움의 무게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낸 무게였다. 그래서 덥고 힘든 와중에도 쉼 없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하는 일도 도움이었기에, 트럭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구호물품은 기분 좋은 따스함을 불어넣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무거운 꿈을 지고 있었는지. 무거운 구호 물품을 들고 나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의 꿈의 본질은 도움이었다.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고집해왔었다. 더 쉬운 길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종사하며 남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명확한 존재의 본질을 현실이라는 장벽에 갇혀 잠시 보지 못하고 있었다.

꿈은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이 무게는 나의 선택이자 자각이다. 분명 쉽지는 않을 것이다. 허리와 다리가 욱신대는 와중에도 끙끙대며 짐을 들어야 하리라. 그럼에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 나는 값진 존재일수록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