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윤동주 백일장 금상작(광양시의회장상)] 카톡방에서 생긴 일
[제13회 윤동주 백일장 금상작(광양시의회장상)] 카톡방에서 생긴 일
  • 광양뉴스
  • 승인 2020.09.25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윤희 광양마동중 1학년 3반

초등학교 4학년 따스하고 파릇파릇했던 봄날, 순수했던 우리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최여진, 평범한 여자아이다. 나는 평소에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밝고, 명랑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곳에 가면 낯을 가린다.

나를 포함한 우리 5명 백신지, 신나영, 고준서, 임영인은 같은 반이었고, 4학년 때 학교에서 우연히 같은 모둠이 되었다. 얼마 뒤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모둠발표를 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집에 자주 모였고, 덕분에 우리는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사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 되었다. 봄, 가을 소풍, 5학년 수련회, 6학년 수학여행까지도 항상 같이 다니던 우리는 벌써 중학교에 입학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중학교 반 배정 발표일 다음 날

우리는 오랜만에 다 같이 근처에 있는 사계절 빙상장에 스케이트를 타러 모이기로 하였다. 스케이트를 잘 타지는 못 하지만 얘들이 타고 싶어하니 한 번 타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각자의 집 앞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빛나리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아침 10시까지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놀이터 입구에 도착하였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멀리에서 신지의 긴 생머리가 흩날리고 있는 게 보여서 쉽게 아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신지와 나영이는 놀이터 안에 있는 정자에 걸터앉아 마주 보고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야, 나영아 너 몇 반 됐어?”

이 중에서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신지가 말하였다. 신지는 나랑 가장 친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 모르는 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고, 공부도 잘한다. 선생님들께서도 신지를 예뻐하셔서 완전 우등생 감이다. 이런 얘가 왜 우리랑 노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솔직히 친해지니 아이들이 왜 신지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1반”

나영이가 말하였다. 나영이는 집에 고등학생 언니와 오빠가 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라고 스스로가 말한다. 가끔 눈치가 없고, 너무 솔직해서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 때가 많다.

두 아이가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에 나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서 신지 옆에 앉았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반이 되었는지 침울한 마음으로 나에게 몇 반이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4반이 되었다고, 아쉬운 마음으로 말하였다.

이때 저 멀리서 준서와 영인이가 느긋하게 서로 장난을 치며 놀이터 입구로 들어왔다. 약속 시각보다 30분이나 늦은 준서와 영인이를 보며 나영이는 화가 많이 났는지 두 아이한테 짜증을 내고 있을 때, 나는 나영이 눈치를 보고 있는 준서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너는 몇 반이야?”

준서가 아직도 화를 내는 나영이 눈치를 보면서 말하였다.

“나는 신영이랑 같은 반, 쟤는…….”

이때 영인이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며 말하였다.

“야, 이번에는 왜 우리 다 떨어져 있냐, 아쉽지만 나도, 너희랑 떨어졌어. 난 7반.”

영인이는 뭐가 좋은지 헤헤 웃고 있었다. 영인이는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끼어들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갈 길만 가는 아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영인이의 취미를 물어보면 아마 장난치는 것이라고 답할 만큼. 영인이는 친구들, 특히 준서랑 장난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학교에서도 항상 장난을 쳐서 그런지 여자애들한테는 인기가 없지만 딱 한 가지 장점인 큰 키 때문에 종종 영인이에게 고백하는 여자애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영인이의 단짝 준서는 키가 엄청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남에게 배려하는 성격 때문에 준서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가끔은 장난도 조금 치고 개구쟁이다. 2년 뒤 전교 회장을 꿈꾸고 있어서, 다른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도맡아 하고, 심부름도 곧 잘한다. 지금은 반에서 반장을 맡고 있고, 항상 학기마다 임원들을 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꽤나 하는 편이라서 못 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아이다.

“괜찮아 얘들아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니까”

신지가 나영이를 진정시키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였다.

“오우, 야! 오글거리는 말 좀 그만해”

우리는 신지를 째려보면서 말하였다. 역시 신지는 신지다. 신지는 가끔 우리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우울할 때마다 우리를 웃기려고 노력하는 노력파다. 신지가 하는 말 중 90% 이상은 오글거리는 말일 정도로 신지는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 물론, 우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황급히 대화를 정리하며 빨리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자고 하였다.

그제야 나영이는 진정이 되는 듯 황급히 짐을 챙기고 있었고, 준서와 영인이도 짐을 챙기며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신지는 나영이를 힘들게 진정시켰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준서가 갑자기 핸드폰을 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얘들아 빨리 뛰어! 이 버스 놓치면 우리 2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된다고!”

우리는 서둘러 버스 정류장을 향해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찌나 빠르게 달렸던지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이마들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타려던 88번 버스가 앞에 있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는 우리 옆으로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슈웅”

그 순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버스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나영이의 천둥 같은 목소리였다.

“아 진짜! 그니까 좀 빨리 좀 오지 너희 때문에 버스 놓쳤잖아, 이런 일이 한, 두 번 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이런 적이 몇 번이냐?”

준서와 영인이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버스를 놓친 것 때문에 다들 우울해 보였다. 다들 놀 기분이 아닌지 결국 우리는 이번에 노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서 놀기로 약속하였다. 우리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다음 주에 바로 만나서 놀아야 했지만 우리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였다. 우리가 이 일이 있었던 바로 그 주에 중국 우한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19가 터진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우리나라까지 확진자가 퍼진 후 사람들은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몇 주 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에 걸린 확진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뉴스에도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확진자 수들이 보도되었다.

몇 달 뒤,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확진이 되었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확진자가 늘고 있어서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자, 우리나라는 국가적 총 재난 사태를 선포하였다.

이 일이 있고 한 달 후 우리의 첫 중학교 입학식은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 입학식마저 한참 지연이 되어서 4월 중순쯤에 시작하였다.

우리는 밖에도 못 나가기 때문에 심심해서 핸드폰에서라도 대화하고 싶어서 카톡으로 단톡방을 만들었다. 우리 6명의 단톡방 이름은 `백신 최고임`이었다. 백신지의 백, 신나영의 신, 최여진의 최, 고준서의 고, 임영인의 임, 우리 6명의 각자 성을 따서 이 이름으로 지었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가 없어지고, 백신이 개발되어서 전 세계의 코로나 환자가 치료되길 바라고, 전 세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19가 사라져, 우리가 다시 만나서 놀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단톡방의 이름을` 백신 최고임`이라고 지었다.

몇 분 뒤 드디어 첫 카톡이 왔다.

“띠딩”

“얘두라 보고 싶엉ㅠㅠ 언제 다시 다 같이 만나서 놀 수 있을깡???”

역시 신지다. 신지는 애교가 많은 편이다. 평소에도 자주 우리에게 애교를 부리니 금방이라도 방금 먹었던 점심을 다시 마주할 것 같다.

“웅, 나두”

나는 신지의 말투를 따라 하며 카톡을 보냈다.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ㅠㅠ 빨리 다 같이 만나서 놀고 싶다…….”

가끔 진지한 말을 하는 준서가 말하였다.

“아! 맞다 맞다, 너희 그거 들었어?”

끼어들기가 취미인 영인이가 말했다.

“뭔데? 빨리 말해봐!”

궁금한 것이 많은 나영이가 말했다.

“강릉에 어떤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대!!”

나는 속으로 뜨끔하였다. 엄마, 아빠는 매주 토요일 날 봉사활동을 가신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가족이 나의 중학교 입학식을 기념하여 6년 만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며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제주도로 가기 3일 전에 다른 지역에 폭우로 산사태가 덮쳤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오자,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5박 6일 동안 가기로 했던 가족 여행을 취소하셨다.

그때 나는 정말 화가 나고 울고 싶었다.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 거라서 친구들한테 귀에 딱지가 붙도록 자랑했었는데, 못 간다고 하니 엄마 아빠가 내 마음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정말 미웠다.

나는 너무 화가 나는 마음에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엄마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다정하게 한마디를 하셨다.

“너는 꼭 돈이 되는 일만 할 거야?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지, 엄마는 이런 사람들을 도울 때마다 뿌듯함과 희열감을 느낀단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도 부모님을 따라서 못이기는 척하면서 적어도 한 달에 2~3번씩은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나는 처음에는 못마땅하였지만 3~4번 다녀와 보니 부모님이 사람들을 돕는 기분을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일주일 전, 강릉에 홍수가 크게 나서 주민들이 곤란에 빠졌다고 하였다. 이 뉴스를 접하자마자 부모님은 바로 그다음 날 서둘러서 강릉에 가셨다.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영인이의 카톡을 보자마자 바로 엄마한테 카톡을 보냈다.

“엄마,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엄마는 카톡을 못 봤다. 아니, 안 본 것 같다. 엄마는 그다음 날까지 카톡을 안 봤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뒤로한 채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내가 어제 `백신 최고임` 단톡방에 안 들어간 사이에 벌써 카톡이 500개가 와있었다. 나는 빨리 카톡을 확인하였다.

-여기까지 읽으셨습니다-

“강릉은 우리 지역하고 가깝잖아…….”

“어? 맞아, 맞아”

“우리 지역은 청정지역이라 아직 한 명도 안 걸렸는데.”

“진짜 우리 지역까지 확진자가 퍼지면 어떡하지?”

나는 카톡을 확인하고, 미소를 살짝 입에 머금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못 놀게 될까 봐, 얘들이 진짜 걱정이 많은가 보다.’

“얘들아 그런데, 만약 코로나가 없어지면 너희들은 뭐 하고 싶어?”

나는 영인이의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타고 여행 가고 싶어.”

“진짜? 나두ㅠㅠ”

모든 사람의 얘기에 공감하는 신지가 말하였다.

“가족들이랑 여행가기로 했는데 못 갔어. 하……. 너무 가고 싶다.”

나는 이 카톡을 보내면서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진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카톡을 보냈다.

나는 더 읽는 사람이 없자, 내 방에 들어가서 학원 숙제를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벽에 걸린 가족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였다.

‘하나님, 알라신,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님 제발 우리 부모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게 해주세요.’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신 들을 총동원하여 제발 지나가는 아무 신이라도 내 기도를 들어주었으면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아침부터 안전 재난 문자와 카톡, 메시지들이 잔뜩 와있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맘 놓고 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안전 재난 문자가 계속 울리니 짜증이 나서 다시 자지도 못하고 그냥 일어났다.

무슨 카톡인지 궁금해서 확인하다가 너무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카톡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얼마 전에 보낸 카톡에 답장하였었다.

“엄마, 아빠가 잠시 일이 있어서, 당분간 집에 못 돌아올 것 같아.

밥 잘 챙겨 먹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고 있어 여진아.”

나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완전히 이해하는 데까지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전 재난 문자에는 우리 지역에 확진자가 생겼다고 알려주었다.

“빛나리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녀, 4월 20일 강릉에서 확진”

‘4월 20일? 내가 엄마한테 카톡을 보냈지만, 엄마는 답이 없었던……. 바로 그 날이었다.’

이제야 나는 엄마가 왜 카톡에 답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곧 이 카톡의 의미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카톡을 받고 약 2시간 뒤 근처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고 와서 집에 돌아와 보니 집 안이 너무 허전하였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검사를 받고 나서는 혹시나 부모님이 잘못되었을까 봐 불안하고, 내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이상하였다.

오늘은 내가 코로나 검사를 받은 지 5일째가 되는 날이다. 지금은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부모님이 봉사활동을 하시러 강릉에 간 날과 다 합치면 거의 2주일 넘게 얼굴을 못 본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인지라 강릉에 가시고 나서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어서 나랑 접촉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집에 혼자 있어서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밀린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막상 의자에 앉으니 지금은 공부할 기분도 아니였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수학 문제집을 펴 놓은 다음 `백신 최고임` 단톡방에 들어갔다. 오늘은 카톡이 한 개도 안 와서, 어제 카톡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단톡에 지금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고 보냈다.

“얘들아~~! 나 지금 자가격리 중ㅠㅠ”

“허걱! 0*0 왜???”

“엄마 아빠가 강릉에 봉사활동 가셨다가 코로나에 걸리셨대ㅠㅠ 너무 걱정된다.”

“넌 괜찮아??”

“웅, 다행히 난 접촉을 안 한 것 같아,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자가격리 중.”

“힘내 여진아! 내 사랑을 보내줄게”

“웅웅 고마워^^”

아이들은 나름대로 걱정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하였고, 너무 고마웠다.

심지어 신영이와 나영이는 힘내라고 던킨 도너츠 기프티콘도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집에 먹을 것이 점점 떨어져 간다. 나는 밖에 못 나가기 때문에 아껴서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3일 후면 먹을 것이 아예 없을 것 같다. 나는 하루, 하루가 너무 불안해졌다.

‘하……. 어떡하지?’

다음 날, 아침

“딩동”

‘어? 누구지?’

현관문을 열어보니 현관문 손잡이에 종이 가방이 걸려있다.

‘뭐지?’

집 안에 들어와서 식탁 위에 종이 가방을 올려놓고 단톡방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아이들은 아직 답이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식탁 위에 놔두고, 종이 가방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반찬 통들과 햇반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거지?’

이때 단톡방에서 카톡 왔다.

“서프라이즈!!! 놀랐지? 우리가 널 위해 준비했어^^”

‘신영이?’

“뭐야???”

“우리가 생각해보니까 너희 집에 반찬하고, 밥이 다 떨어졌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우리가 의견을 모았는데, 앞으로 돌아가면서 너희 집 앞에 반찬하고, 밥을 가져다 놓기로 했어. ^3^”

끼어들기를 잘하는 영인이가 말하였다.

“내일은 내가 가져다 놓기로 했어. 기대하시라, 내일 반찬은 돈가스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얘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 몰랐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반찬을 가져다주었을 줄이야, 진짜 상상조차도 못 했었다.’

“얘두라ㅠㅠ 진짜 감동이야ㅠㅠ”

솔직하지만, 때론 그것이 좋을 때도 있다. 그 상황이 바로 이때다.

솔직한 나영이가 말하였다.

“그만 울어. 지금까지 우리를 뭘로 보고.”

“얘들아 우리 우정 변하지 말자. 우정은 풍요를 더 빛나게 하고, 풍요를 나누고 공유해 역경을 줄인다는 말이 있잖아. 우리 앞으로 더 잘 지내보자.”

수업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친구끼리 싸우지 말라고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을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걸 기억하다니, 정말 준서는 우리와는 다르게 수업시간에 집중력이 좋은 것 같다.

“얘들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잖아, 너희는 정말 그런 친구들 같아. 진짜 다 너무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야. 얘들아 우리 앞으로 영원히 지금처럼만 지내자. 진짜, 진짜 고마워.ㅠㅠ”

“나영이 너까지 새삼스럽게 왜 이래!”

“하…….눈에서 물이 흐른다.”

“나영이가 신지가 되고 있어!!!”

“오글거리는 말 주의보, 모두 대피하세요.”

나는 1주일 뒤 코로나 검사가 나왔고, 다행히 검사결과는 음성이였다. 내가 자가격리 동안 얘들은 매일 집 앞에다가 종이 가방을 걸어놓았고, 나는 건강하게 자가격리를 마칠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무사히 퇴원하시고, 나도 건강히 자가격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내 친구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몇 주 뒤 고마운 마음으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떡볶이 파티를 하였다.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 백신이 개발되고 훌륭한 의료진들 덕분에 1년 뒤,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종식되었다.

나는 10년 전 이 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자, 한 자 펜을 들고 그 기억들을 더듬으며 써 보았다.

아이들은 현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신지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심리상담가가 되었고, 나영이는 궁금한 것이 많고 솔직하며, 상대방의 일침을 잘 찔러서 기자가 되었다. 준서는 10년 전부터 반장, 전교 회장을 해서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었고, 끼어들기를 잘하고 키가 큰 영인이는 모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부끄럽지만, 봉사 정신이 강하고, 착하고, 배려를 잘하고,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운동이라서 가장 적성에 맞는 경찰이 되었다.

우리의 우정은 10년 전보다 더 돈독해졌다. 우리의 우정은 앞으로 영원 하자라는 약속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들을 만나고 있고, 아직도 ‘백신최고임’ 단톡방은 남아있다. 심지어 우리는 따로 단톡방을 만들지 않고 이 단톡방에서 서로 얘기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특별하고 가장 소중한 내 10년 전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