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생활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20.12.11 16:39
  • 호수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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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시인·소설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친구가 쌀을 보냈다. 정갈하게 담겨있는 쌀 봉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른 봄부터 볍씨를 파종하고, 못자리를 내고, 모내기를 하고, 윤이 나는 흰 쌀알이 되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들였고 힘들었을지 아는 까닭이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귀한 쌀을 왜 이렇게 많이 보냈냐고. 아까워서 어떻게 먹겠느냐고. 친구가 말했다. 어르신한테 고향 맛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밥해서 아버지와 함께 맛있게 먹으라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쌀을 씻어 밥을 했다. 구수한 밤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가슴이 설렜다. 고슬고슬하게 잘 된 밥을 공기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렸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밥은 왜 이렇게 맛있냐고. 원주가 아버지 밥 해드리라며 보냈다고 하자,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힘들게 농사지었을 것인데. 밥숟갈을 든 아버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난 아버지와 마주 앉아 친구의 귀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숟가락에 담았다. 밥알이 입 안에 닿는 순간 감동의 물결이 전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지금까지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까지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어릴 때는 엄마 아버지와 함께 농사지은 것을 먹으면서도 당연한 것인 줄 알았고, 결혼해서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서도 감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가슴이 벅차오르지는 않았다.

친구의 귀한 마음은 눈부신 햇살이 되어 축복처럼 온 집안에 내렸다.

올 해는 내게 너무 힘든 해였다. 코로나19가 몰려오기 시작한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혹독한 열병에 시달렸다.

생애 한 번도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을 감당하면서, 그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일 년 가까이 염증이 사라지지 않는 몸에서는 열이 떠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숨 쉬기도 힘들었다. 호흡곤란이 와서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기도 했다.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바깥출입도 하지 않았다. 누가 전화를 해주면 너무 고마웠다. 그래도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것은 두려웠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황폐해져갔다. 도저히 참기 힘들 때는 엄마를 안고 흐느끼기도 했다. 치매로 아무도 못 알아보면서도 엄마는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는 세상을 잃어버린 듯했다.

참기 힘든 절망과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내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엄마의 부재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나온 책은 나를 슬픔 속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책을 쌓아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성껏 사인을 해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보냈다. 책을 잘 받았다고 전화와 문자가 왔다.

나이 드신 선생님들의 격려는 용기와 힘을 주었고, 친구들의 다정한 메시지와 전화는 삶의 기쁨을 느끼게 했다.

스타벅스의 티켓과 치즈 케익을 보낸 옛 제자는 보고 싶다고 했고, 향기 나는 차를 배달해준 대학동창은 코로나19가 끝나면 만나자고 했다.

강원도의 푸른 바다를 가득 담아 노가리를 선물로 준 친구는 남편과 술 한 잔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라며 하트를 소복하게 보냈다. 거기에다 고향친구는 혼신의 힘으로 지은 쌀까지 보내준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면서 내가 아직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귀한 마음들은 나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온 몸을 옭아매고 있던 상처들을 치료해주었다.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