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이를 걷다
도시 사이를 걷다
  • 광양뉴스
  • 승인 2021.05.21 16:30
  • 호수 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성진
건축가(도시공학박사)
노성진공간연구소장

집의 Buying과 Living 사회학

우리나라는 압축적 도시 성장에 기여한 주거유형이 공동주택임에 반해 일본은 단독형 주택이 현재 90%를 차지한다. 약 59%의 우리나라 아파트 주거 유형에 비하면 단독주택 유형의 비율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공급시대에서의 아파트 주거 유형이 사회여건과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면 정보화시대에서의 주거유형은 이제 질적 공급에 집중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후이후 근대화, 고속발전이후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기점으로 공동주택 선호에서 단독주택 선호로 바뀌게 된다.

아시아 주요국가의 단독주택의 선호도 조사에서 한국은 50.1%에 비해 중국은 72.8%, 일본은 65.5%, 대만71.7%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단독주택의 주거대상 적합성과 연결해 보면 우리나라 이외 4개국 모두 65%이상 선호도가 나타난 것으로 보면 우리처럼 아파트나 공동주거유형의 선호조건과 재미있는 비교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아파트와 단독주택 모두 환금성, 투자의 적합성을 낮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살고 있는 주택을‘주거 공간’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집을 사고파는 일이라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서의 집을 사고파는 일은 왠지 냉장고를 사들이고 중고로 파는 것과의 개념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농경사회와 통제신분제도에서의 집이란 사고파는 물건이 될 수 없었다.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 삼국시대를 지날 때에 발맞추어 신분제도의 규범이 절정에 이르렀던 것을 감안해 보면 서민들이 갑자기 신분 상승이 되어 그 비싼 집을 장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집을 비웠다는 것은 가문이 몰락하여 야반도주하거나 전쟁에 의해 폐허 된 연유 외에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낳아서 자라고 터를 일구고 살아온 흔적이 사람 그리고 지역과 자연이 통기(通氣)되어 하나였을 시대에서는 적어도 집은‘어머니’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서방국가들과 강제적 국교를 맺으면서 개항되었고 일본과 서구문물이 음으로 양으로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조선의 유교지휘의 봉건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서구문화의 유입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우리에게서 미처 예상되지 못했던 서구의 문물은 자본주의라는 도시팽창요인을 동반하였고 소위‘양옥’이라는 이름의 집들과 침탈통제로 인한 일본인의 유입이 맞물리면서 일본식 건축이 속속 들어서게 되는 1900년대 초, 외국 건축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토지수탈에 시달리던 농민과, 도시노동집결이 필요한 이유로 도시로 모이는 노동자들이 합세하여 도시는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 여기서부터 일본인과 한국인의 집장사들이 크게 활동하게 되면서 우리민족의 집의 정서는 길을 잃게 되었다. 집이 상품이 되어 날개달린 듯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일은 집을 규범화하고 보급목적에 규합시켜 1941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을 설립 지휘아래 식민통제수단으로 대량건설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주거문화의 고유성은 무너지고 만다.

‘갑, 을, 병, 정, 무’형 주택을 공급하면서 고유성 말살과 일본의 주거문화의 주입이 현실화 되었다. 이것들의 결과는 집이란 한 사회집단의 생활양식과 정신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로 다른 양식의 집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그 사회에 새로운 의식이 유입되고 동화되는 현상을 낳았다. 우리의 집은 그로부터 상품으로 전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실학자였던 이중환 선생이 쓴 택리지(擇里志)에서도 가장 중요한 땅의 선택은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 네 가지를 근본으로 두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만 부족해도 살기 좋은 곳으로 볼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인문학(人文學)과 지문학(地文學)은 어머니와 같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뇌에서 어머니를 지울 수 없듯이 집을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본다는 생각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플 수밖에 없다.

삶에서 시간과 계절의 아우라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쁘다고 데우지 않고 먹는 식은 밥일 수 있고, 바쁘다고 속옷만 입고 길을 나서는 일과 같은 일이 된다.

밥그릇 위로 오르는 열기와 밥의 김, 장소와 여건에 따라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인간이 절대 버리지 않아야 할 인간 존엄성의 가치와 품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집은 당연히 사고 팔수 있다. 그러나 쉽게 이동되는 물건이 될 수 없으므로 집은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최소한 놓지 말아야 할 절대 가치다.

뒷문을 열면 낭떠러지가 아닌 바람을 타고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들리고,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온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는 대문 열린 작은 마당쯤의 행복이 우리 정서의 본 모습이란 것을 우리는 모를 리가 없다.

밤을 지우거나 정복해버리는 낮보다 모두를 잔잔히 밝히는 달빛을 사랑했던 민족의 혼이 다 지워졌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답은 가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