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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1.07.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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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심 숲해설가(숲마루)

비 오는 날의 신갈나무 맛집…공감의 의미를 생각하다 <열 다섯번째 이야기>

비 개고 햇살이 드러난 틈을 타 가야산에 가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장화를 신었고, 가방에는 우산, 우비도 들었으니 그닥 당황스럽지는 않다. 여름날 장마철 소나기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볼 요량으로 교회 처마 밑에 앉아서 비를 감상하며 잠시 머문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난 우산을 쓰고 가던 길을 나서고, 다시 하늘이 열린다.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가야산 오를 때면 맨바닥이 거의 드러난 계곡의 돌멩이를 들어 올려 수서곤충 1~2종쯤은 눈맞추고 지나가는데, 불어난 계곡물이 거친 소리와 함께 급하게 흐르는 모습만 바라보며 그냥 지나친다.

대신 산에서 작은 신갈나무 맛집을 발견하고 한참을 머문다. 내가 신고나온 장화 높이 밖에 안 될 작은 나무에 4종의 애벌레들이 함께 세 들어 살며 나뭇잎을 열심히도 먹었다. 이 구역의 소문난 맛집인가. 잎살만 먹은 녀석, 잎을 통으로 먹은 녀석. 먹는 방법도 다르다.

몸이 광이 나는 젤리 같은 물질로 이뤄진 참나무잎벌 애벌레. 올 봄에 가야산과 백운산 곳곳에서 신갈나무 잎의 뒷면에 여러 마리가 함께 잎살만 먹는 것을 발견하고, 2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참나무잎벌의 생활사가 알려진 것이 없다는 곤충전문가의 얘기에 호기심이 일어 사육을 결심하고 데려왔는데, 안타깝고 미안하게 며칠 만에 죽었다. 6월 초 이후에 보이지 않던 녀석이 7월 초 다시 나타났다. 한살이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 걸까? 3mm정도나 될까싶을 만큼 지금까지 만난 참나무잎벌 애벌레 중에 가장 작은 녀석이 제 몸에 비하면 거인 같은 흰무늬껍질밤나방 애벌레 옆에서 문제없이 살고 있다. 다시 사육을 시도해 보고 싶지만 미안한 마음이 커서 내년으로 미뤄본다.

흰무늬껍질밤나방 애벌레, 보기보다 온순한 성질을 가졌나보다. 몸에는 듬성듬성하긴 해도 긴 털이 있어서 조금 위협적으로 보이는데, 그저 자신의 약함을 보완하기 위한 위장인 듯하다. 너무도 작고 나약한 참나무잎벌과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갓 태어난 어린 동생을 보호하는 언니 같다. 녀석이 참나무잎벌 애벌레보다 커서 그렇지 실은 아직 중령도 안 된 어린 애벌레다. 성장 단계가 다른 녀석의 형제자매들이 같은 나무에 살고 있어서 처음 만났지만 자연 상태에서 성장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녀석은 어릴 때는 잎살만 먹다가 자라면서 잎을 통으로 먹는 것도 확인한다.

신갈나무의 또 다른 동거충, 은무늬재주나방 애벌레. 실처럼 가는 몸을 한 아직 어린 애벌레다. 작년에는 중령 이후 제법 성장한 애벌레만 만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녀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생김새가 눈에 익어 자세히 보니 배마디 1마디와 8마디의 돌기, 머리 모양이 같음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본 녀석들은 몸이 회갈색에 가까웠는데, 아주 어린 애벌레의 몸은 전체적으로 연한 초록빛이 보인다. 아직 어려도 입틀이 발달했는지 잎을 통으로 먹는다.

그리고 정체가 궁금한 또 한 종의 애벌레. 집에 돌아와서 애벌레도감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누군지 모르겠다. 그나마 아리랑꼬마밤나방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의문의 애벌레는 실처럼 가는 몸을 잎 가장자리에 딱 붙이고 마치 잎의 일부인냥 위장하고 잎의 가장자리를 통으로 먹고 있다. 위장술이 대단하다.

작은 신갈나무의 같은 잎이나 바로 옆에 있는 잎에서 서로 다른 4종의 애벌레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대견해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삶터와 먹이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먹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녀석들이 더 예뻐 보인다. 하긴 작은 나무라도 나눠 먹기에 부족하지 않기에 여유를 부리는 거겠지만 단지 먹는 것 이상의 탐욕을 부린다면 불가능한 평화라는 것도 알기에 그 모습이 볼수록 좋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다보니 눈이 애벌레에서 어린 신갈나무로 옮겨간다. 이럴 수가! 커다란 나무들의 그늘에서 햇빛도 제대로 못 보는 어린 나무가 미처 자라기도 전에 저렇게 다양한 애벌레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먹히고 잎을 잃어버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닿으니 완전히 다른 감성에 젖게 된다.

평화롭던 공간은 금세 살벌한 전쟁터로 변한다. 어린 신갈나무는 선한 피해자가 되고, 애벌레들은 무지막지한 가해자로 돌변한다.

공감, 우리의 삶에서 주로 절대적 긍정의 감정으로 사용되는 말. 그런데 어떤 상황, 누구에게로 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절대적 감정이 아닌 상대적 감정이었다는 것이 확 다가오는 순간이다. 공감의 대상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감정이지만 공감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상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될 수도 있는 상대적 감정.

비 내리는 신갈나무 맛집 앞에서 뜬금없이‘공감’의 난해함을 알게 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현명하고 합리적인 공감은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겠구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