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이를 걷다] 참 좋은 도시건축에 대한 묵상 - 불계공졸(不計工拙)
[도시 사이를 걷다] 참 좋은 도시건축에 대한 묵상 - 불계공졸(不計工拙)
  • 광양뉴스
  • 승인 2022.01.14 17:14
  • 호수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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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진
건축가(도시공학박사)
노성진공간연구소장

김정희 선생이 그림을 그리거나 서도를 하고 찍는 인장이 20여개 있는데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에는 그 중에 하나인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그의 선비사상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학예일치의 목표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알맞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지재불후(志在不朽)와 일치하는 말이다.

불계공졸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내가 한 것들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200개 정도나 되는 김정희의 호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호는 완당(阮堂)이다.

완(阮)자는 악기 이름 월금(月琴)이라는 뜻이 있듯이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완성하거나 그렇지 않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완당(阮堂)이 되면 ‘조금 덜 완성된 집’정도로 해석 할 수 있다.

철저한 시·서·화 三絶 일치를 삶에서 겸손을 견인하는 도구로 사용하면서 분수를 지킨다는 수졸(守拙)의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림에서는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주장하여 기법보다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풍(文人畫風)을 매우 존중한 사람이다. 이는 지금으로 말하면 매우 아카데믹한 접근자세라고 볼 수 있겠다.

무엇인가의 완성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과정을 매우 중요시 하겠다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서권기(書卷氣)는 학자적 품격으로 해석해서 볼 수 있는데 그 안에는 매우 고단한 함몰 같은 서릿발처럼 자신을 대하는 지기추상(持己秋霜)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문자향(文字香)은 이러한 학예일치는 단순히 예술적인 연습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문적 교양이 그 사람의 몸에 배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해 진다는 말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앞의 김정희 선생 삶은 우리에게 삶에서 무엇으로 우리를 간간하게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실천했다면 후단의 찰스램은 행복한 양보를 실천한 사람의 본연을 보게 된다.

시, 서, 화 3절과 애수와 유머를 머금은 행복한 양보를 선택한 찰스램의 언어가 건축에서는 어떤 언어로 대치 할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 할 일이지만 필자는 한마디로 수졸(守拙)의 상위 경지인 “불계공졸不計工拙”을 꼽고 싶다.

답은 없지만 어디에 과하게 치우치거나 편입, 함몰 되는 것을 경계하여 모호함을 분명하게 하려는 과정을 견디어 내는 일련의 과정에 서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건축에 있어서 우리에게 던지는 이 시대의 메시지는 자기의 기준과 체계를 숭배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하는 사람은 두려운 것이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칼크로스karl kraus’는 지금 현대인들에게 가볍디가벼운 삶의 편익에 대한 조소(嘲笑)하듯이 내 뱉은 말이 있다. “우리가 잘 살게 될 도시에 바라는 것들은 아스팔트 포장, 물청소 된 거리, 집 출입문 열쇠, 난방, 온수, 소음차단이다. 그럼 나는 혼자서도 편하다.”라고 했다.

이러한 사회적 보편화 된 가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해체되고 명쾌한 해답을 요구하는 숙고(熟考)와 영혼 없는 후퇴를 경계한 말일 것이다.

우리의 현대 건축이 양산되어 찍어 내듯이 도시를 점령하지만 문학적 태도로 또는 회화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건축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감되어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지금의 도시를 예견하여 그렇게 차고 넘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인지 완당(阮堂)에게서나 찰스램에게서 시, 서, 화에 건축언어를 배우게 된다.

성정이 드러나 있는 이 이야기를 건축언어로 바꾸어 보면 쉽게 삶과 건축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서가 섬세한 건축을 좋아하고 인정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아니하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건축을 무조건 사랑했다. 부끄러움을 알아 수줍어하고 겁도 조금 내는 건축과 순전한 건축도 좋아했다”이다.

건축은 言語로 시작한다. 언어는 서사(敍事)이고 文學이다. 불계공졸(不計工拙)이 가진 함의는 도서관 하나의 내용과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