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신독(愼獨) :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다
[고전칼럼] 신독(愼獨) :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01.28 16:37
  • 호수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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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신독은 한자공부를 한 사람이면 자주 보는 익숙한 말이다. 사서(四書)에 해당하는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나오기 때문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좌우명(座右銘)이 신독이었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은 신독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독에 반(反)하는 말이다. 동양 고전에서 군자와 소인의 기준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학식과 덕행이 모범이 되어 높은 관직을 지내던 사람을 군자(君子)로 표현했으며 도량이 좁고 자기 이익만 알며 간사한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사서중 대학과 중용은 《예기(禮記)》의 한 편에서 따로 독립해 내서 한권으로 만들 책들이다. 대학은 예기의 42편이고 중용은 31편에 해당한다.

대학 제6장 성의(誠意) 편에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이 나온다.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며,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善)은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는데 이를 일러 스스로 겸손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자신이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君子必愼其獨也).

이어서 소인은 일없이 홀로 있을 때 좋지 못한 일을 해서 이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군자를 본 뒤에 부끄러운 듯이 자기의 잘못을 덮는다고 했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악행을 저지르는 소인배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함부로 남의 험담이나 그 사람의 약점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이럴 때 수양이 되어있는 사람은 맞장구를 치지 않고 조심하며 언행을 자제한다.

중용의 신독은 도가 잠시라도 나에게서 떠나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가 보지 않더라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누구도 듣지 않더라도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숨어있는 곳에서 보다 자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은미(隱微)한 데서 보다 자신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莫顯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고 했다.

대학은 증자(曾子)의 저술이며 중용은 공자의 손자 자사자(子思子)의 저술이다. 그러므로 2500년 이 된 지혜의 고전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예언같이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누가 보지 않아도 삼갈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CCTV 기술이 발달하여 교통법규 위반이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임이 밝혀지는 일이 생기고 전에 잘못했던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자주 생기는 경우를 보면 예언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물론 신독이 유교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작금의 현실에 결부시켜 남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 전에 스스로 조심해야 된다는 단순한 의미나 처세(處世)적 가르침만은 아니다.

유교이념을 가치로 삼은 우리 조상들 에게는 평생을 수신(修身)하며 수기안인(修己安人)의 대의를 품었던 군자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신독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독의 가치가 폄하되는지 모른다.

신독의 진정함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모토로 삼은 대학의 기본자세이자 항상 수련해서 행해야 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퇴계 이황과 백범 김구 선생이 누가 보든 안보든 신중히 행동할 것을 수신(修身)의 기본자세로 여겨 자신을 절제하고 흐트러질 때 마다 신독의 자세로 돌아가자고 자신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성리학자들이나 중국의 유자(儒者)들이 수기안인을 위해 수준 높은 신독을 실천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았었다.

현대사회에서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볼 때마다 가관(可觀)이 아니다. 누가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했다가 나중에 나타나니 변명하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경우가 어쩌면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보인다.

미리 수련이 되어있었다면 청문회를 해도 자랑스럽게 통과하겠지만 신독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자는 청문회가 두렵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낙마하는 경우가 생긴다.

누구든지 어려서부터 누가 보지 않더라도 신중하게 행동하고 언행을 삼간다면 아무리 비방을 하려해도 피해갈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