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꽁꽁 겨울 이야기
[융합동시이야기] 꽁꽁 겨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2.04.08 17:44
  • 호수 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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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작가

꽁꽁 겨울 이야기

<초등학교 과학 4-1 2. 물의 생태 변화>

한겨울 계곡물이

꽁꽁 언 돌 틈 사이로

조잘조잘 흘러가고 있어요

손 꽁꽁 발 꽁꽁

입술마저 꽁꽁 얼었어도

끼리끼리 조잘거리며

흘러가고 있어요

나무도 꽁꽁 바위도 꽁꽁

밤하늘 별들마저 꽁꽁 얼었어도

끝없이 조잘거리는

물들의 겨울 이야기

 

편지 한 장에 담긴 무게

전미진 할머니께서 우리 병원에 오신 것은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 아침이었다.

“글쎄, 장독대에 된장 뜨러가다 넘어졌다우.”

“엉치뼈 골절상이네요. 큰 부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니, 당분간 입원하셔야겠습니다.”

원장님께서 X-레이 사진을 살펴보시며 말씀하시자 할머니께서는 긴 한숨을 내쉬셨지만, 혼자 살기에 돌보아줄 사람이 없으니 그러자고 했다.

할머니는 별반 말이 없으시며 원장님과 간호사들의 지시에 잘 따르는 편이었다. 움직임이 어려워 주로 텔레비전을 보며 지내셨다.

한 달 남짓 지나자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하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불러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조용히 단 둘이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디 그럴 만한 곳이 없을까?”

“그러시다면 간호사 대기실이 있으니 그리 가시지요.”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간호사 대기실로 갔다. 할머니는 손가방에서 저금통장과 도장을 꺼내 내 앞에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통장에 1억2천원이 들어있는데 내가 평생 모은 돈이라우. 내 병원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제하고 나머지는 이 병원에 기부하고 싶다우.”

“네? 기부를 하신다구요? 이 돈을 다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어린 아이들 중에 돈이 없어서 치료하기 힘든 아이가 있다면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할머니 말씀에 깜짝 놀랐다. 전혀 뜻밖의 말씀이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께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지난날을 이야기해 주셨다.

할머니는 20대에 결혼을 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애를 못 낳은 게 모두 자기 잘못인 것 같아 낯을 들고 다니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40이 다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때서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당신보다 남편이 더 기뻐했다. 종손집안 대를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다섯 살 무렵 급성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치료다운 치료를 해볼 수도 없었다. 여기저기 빚을 내 치료비를 충당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일어서지 못했다.

“약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보내다니 너무나도 원통했다우!”

남편은 그날 밤 할머니를 부여안고 통곡하며 괴로워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남편도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머니는 그 뒤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회복하여 일어나고 보니 앞날이 막막했다.

간신히 원기를 회복한 할머니는 집 앞에 남은 텃밭에서 이것저것 푸성귀를 지어 오일장에 내다 파는 일을 시작했다. 장사를 한다기보다는 집안에만 있으면 힘들고 괴로운 생각이 자꾸 떠올라 바람도 쐴 겸 나들이 삼아 시작했다. 나다니고 보니 할만 했다. 시장 바닥이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라서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나고 무엇보다도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 동안 만큼이라도 시름을 잊을 수 있었고, 덩달아 활달해지고 웃음도 나오곤 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가꾼 농산물만 아니라,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나물이든 약초든 무엇이든 시장으로 모아와 팔았다. 노력한 만큼 돈도 모아지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내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것 같아 평생 가슴 아팠다우. 내 아들 대신 다른 아이라고 살릴 수 있게 해 줘요. 대신 이 일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면 해요. 여러 사람에게 알리거나 방송국에 연락해서 떠들썩하게 하지 않도록 말이유.”

“네, 그럼 원장님과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원장님실로 내려가 원장님께 그 사실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원장님도 깜짝 놀라서 당장 그분을 만나뵈야겠다며 올라가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침상에 편지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나를 찾으려 하지 마시구려. 아까 말한 대로 그렇게 조용히 처리해 줘요.”

나는 얼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원이 꺼져 있어 연결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편지에 담긴 내용이 주는 무게 때문에 더 이상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