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힘들어도 되나요”
“이렇게 힘들어도 되나요”
  • 광양뉴스
  • 승인 2022.08.19 17:21
  • 호수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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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와 함께 한 엄마의 캠핑 ‘찐’ 후기

프로 캠퍼들도 한 수 접고 간다는 8월, 무더위에 밖에 있는 것조차 어려운 이 더운 날에 무식해서 용감한 엄마가 삼남매를 데리고 첫 캠핑을 다녀왔다. 생각하면 할수록 왜 그랬나 싶은 첫캠핑에 대한 소회를 슬쩍 남겨본다.

호텔과 리조트처럼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던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 캠핑의 매력을 40살이 넘도록 느끼지 못했다. 일하고 살림하고 육아하느라 지치는데 굳이 여행을 가서까지 고생을 해야 하는 캠핑은 힐링이 아니라 극기훈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도 캠핑해보면 안 돼요? 다른 친구들은 캠핑갔대요. 나도 캠핑해보고 싶어요.”

몇 번을 들으니 내 욕심에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맘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진짜 캠핑이 가고 싶은지, 가게 되면 해야 할 일도 많고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 수 있다고 했는데도 삼남매 모두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하니 굳어 있던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우리도 캠핑해보자.”

딱 나흘 동안 캠핑을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대~충 캠핑에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고 캠핑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얻었다. 광양에서 가까운 하동에 전국에서 유명한, 아이들이 놀기 좋은 캠핑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캠핑장도 예약했다. 예약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하늘이 우리의 첫 캠핑을 돕는 듯 가고 싶었던 날짜를 양도하는 분까지 나타나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근무 때문에 첫 캠핑을 함께 하지 못해 나 혼자서 초·중학생 삼남매를 데리고 다녀와야 했다. 텐트부터 타프, 식기, 의자, 테이블, 숟가락, 쿨러, 조명, 이불 등등 챙겨야 할 게 수십 가지였다. 차 트렁크부터 루프박스를 캠핑 장비로 꽉 채우고 마트에서 1박 2일 동안 먹을 음식까지 구매하고 나니 정말 사람보다 짐이 더 많다.

그늘막 역할을 해주는 타프의 폴이 캠핑 첫날 아침에 도착한 것부터가 살짝 험난한 캠핑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캠핑을 만만하게 본 대가는 아주 후했다.

첫 번째 시련은 출발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막둥이가 뒷통수를 다친 것이었다. 병원에 들러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상처를 봉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핑을 가고 싶다고 해 예상시간보다 2시간이 늦게 캠핑장에 도착했다. 2시 입촌이었는데 3시를 훌쩍 넘겨 도착하니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우리 가족을 격하게 반겨주었다.

더위를 피하려고 타프를 치기로 했는데 생전 처음 도전해보는 타프 설치가 쉽게 될 리 만무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챙겨온 것들을 꺼내 실랑이를 하는데 1시간을 훌쩍 넘겨도 타프가 완성이 안 된다. 부품이 부족한 이유였다. 당연히 택배 상자 안에 타프를 설치할 수 있는 부품이 들어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미리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다. 결국, 타프 설치 포기.

아이들과 감성 가득한 첫 캠핑을 위해 도톰한 생삼겹살에 닭꼬치까지 준비했는데 이번엔 구이바다(캠핑용 사각 버너세트)가 안 보인다. (이런걸 멘붕이라고 하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혹시나 구이바다로 부족할까 싶어 마트에서 작은 버너를 하나 더 사온 것. 냄비에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닭꼬치는 그대로 집에 들고왔다.

다른 사이트들은 티비도 보고 선풍기도 하루 종일 도는데 우리 사이트는 충전해온 선풍기도 멈췄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캠핑장인데 모르고 전기릴선을 안챙겨왔기 때문이다. 이런게 필요하다는 걸 도착해서 알았다. 물놀이하려고 튜브까지 준비해왔는데 물놀이도 못해, 매기잡기도 못해, 닭꼬치도 못구워먹고 이게 뭐람. 엄마의 미숙함 때문에 아이들까지 고생을 하는 것 같아 맘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코스는 불멍이었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는 계획이었다. 살짝 선선해진 밤공기에 세 아이와 함께 불멍을 하고 있노라니 첫캠핑의 시련도 잠시 잊혔다. 하지만 불멍도 처음이라 준비해온 나무가 적어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끝나 아쉬움이 남았다. 전기 공급이 안 되니 보조배터리에 선풍기 연결하고 텐트에서 잠을 청하며 다사다난했던 첫캠핑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를 깨운 건 푹푹 찌는 찜통더위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더위는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들에게 슬쩍 “우리 얼른 밥 먹고 집에 갈까?” 했더니 세 아이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준비해온 봉지라면 끓여서 8월의 여름 햇살과 함께 아침을 해결하고 곧장 짐 싸기에 돌입. 12시 퇴촌 시간보다 2시간 빨리 캠핑장을 떠났다. 자동차 연료가 떨어져 견인차까지 불러 겨우 도착한 우리집에서 에어컨을 최대로 켜놓고 한숨 돌리는데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마어마했던 첫캠핑은 다음날 짐 정리까지 하고 나서야 마무리가 됐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더니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다음번 캠핑은 기필코 성공하겠다고 말이다. 더 흥미로운 건 삼 남매들도 같은 맘이었다는 것이다. 힘드니까 다시는 안 하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힘든 건 힘든 거지만 그 자체로 즐거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또 그 말 덕분에 나는 용기가 생겼다. 실패해봤으니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첫 캠핑은 우당탕탕 엉망진창이었지만 캠핑을 하러 가기 전 준비하는 동안 느끼는 설렘부터 아이들과 함께 짐을 싸고 장을 보고 뙤약볕 아래에서 아이들과 텐트를 설치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모닥불을 바라보던 순간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텐트 안에 옹기종기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캠핑의 과정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즐거움이었다. 그것이 캠핑이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미즈캠핑이 뜬다고 한다. 아빠들의 전유물 같았던 캠핑을 엄마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캠핑을 미즈캠핑이라고 하는데 본의 아니게 나의 첫 캠핑은 미즈캠핑이 되었다. 엄마도 잘 해낼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미즈캠퍼로 아이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프로 캠퍼가 되는 그날까지 엄마의 도전은 계속된다. 파이팅!

이혜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