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 거울 이야기
융합동시이야기 - 거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2.09.30 18:44
  • 호수 9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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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거울 이야기 :  4-2 3. 그림자와 거울>

 

무지개를 만들어서

 

프리즘에 햇빛을 통과시켜

흰막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빨주노초파남보

하늘에 뜬 무지개와 똑같았다

 

무지개는 선녀들이 

건너다니는 다리라는데……

 

그 고운 선녀들은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무지개를 찾아 떠났다는

어느 소년도 생각해 보았다

 

자꾸만 프리즘을 움직여

선녀들을 찾아보았다

어느 소년도 함께 찾아보았다

 

빛의 굴절 이야기

 

소나기 그쳤니? 대답하기도 전에 조그만 봉창문 밖으로 초승달처럼 희디흰 누나의 얼굴이 나타나 두리번두리번 무지개를 찾았습니다. 앞산 머리에 무지개라도 걸리는 날이면 야, 저번 것보다 더 이쁘다! 

누나는 치렁거리는 머리칼 쓸어 넘기며 봉창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뒤척이고 흐느적거리다가 끝내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얼굴보다 더 새하얀 손으로 훔쳐내고는 물먹은 수건처럼 축 처져서 봉창문에 걸쳐지고 말았습니다. 

수건처럼 걸쳐서는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그렇게 무지개가 왔다 간 날은 누나는 무지개를 그렸습니다 몇 장이고 몇 장이고 그려서는 좁은 방안 가득 펼쳐 놓았습니다. 여느 때는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 하였지만 그렇게 무지개를 그리는 날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을 흩뿌리는 손짓까지도 더 초롱초롱하였습니다. 마침내 방안 가득 무지개가 넘쳐 나면 한 장 한 장 무지개 위에 또다른 그림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무지개를 건너가는 선녀들을 그리고 깃털 모자에 칼을 차고 말을 탄 왕자님을 그리고 봄 수양버들 그늘 아래 먼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공주를 그렸습니다. 

탤런트나 가수를 그리거나 우리 부모님과 나 하늘 멀리 아득하게 사라지는 비행기도 그리고 으리으리한 승용차에 미키마우스나 팬더곰 노루 토끼 다람쥐에 아기 공용 둘리까지 누나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 무지개 위에 생생하게 살아나서 방안 가득 돌아다녔습니다.그런 날 밤에는 누나는 내내 끙끙 앓았습니다. 그 조그마한 누나의 몸에서 이번에야말로 물기라고는 한 점도 없이 다 뽑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땀은 끊임없이 흐르고 꿈인 듯 생시인 듯 무어라고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라서는 엄마를 찾았습니다. 엄마는 그때마다 오냐 오냐,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엄마 여기 있다! 엄마 여기 있다! 자꾸 자꾸 중얼거리며 안아서 밤이 이슥토록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밤중 어느 때쯤 누나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서는 깊은 잠의 굴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누나는 햇빛조차 흐릿한 그 굴속으로 그 많은 무지개를 끌고 들어간 것은 아닐까요. 아름답고 화려했던 무지개의 빛깔들이 차츰차츰 바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