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성장 동력은 시민의 사랑과 관심”
“미술관 성장 동력은 시민의 사랑과 관심”
  • 지정운 기자
  • 승인 2022.11.04 13:17
  • 호수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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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 
경쟁력 있는 미술관 키우기 고심
지역 작가 새로운 창작의욕 자극
어렵게 거장 조르주 루오전 개최
“당분간 오기 힘든 명화…꼭 봐야”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

 

◇서양화 전공한 현대미술 전문가

“지역의 보배인 미술관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민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림만 보는 미술관이 아닌 생활공간, 소통공간으로 생각하고 많이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개관 후 1년 6개월을 보내고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의 이지호 관장이 창간 23주년을 맞은 <광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역민들에게 전한 바람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지호 관장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해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현대미술 전문가다. 

유학을 마친 후 연세대 겸임교수를 거쳐 대전시립미술관에서 5년간 실무를 익히고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3년간 학예실장을 맡았다. 경력을 인정받은 그는 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에서 7년간 관장을 역임한 후 지난해 설립된 전남도립미술관 초대 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공부해 오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이 관장이 전남으로 오게 된 이유를 묻자 “미술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간명하게 말했다. 이 관장에게 전남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관통하는 곳으로, 잠재된 문화 인프라와 잠재성도 있지만 아직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은 곳이다. 그는 새롭게 설립되는 미술관을 통해 전남의 문화적 잠재성을 깨우고 인프라를 드러내 보고 싶어한다.
 
◇신생 미술관 알리려면 전시 작품 좋아야

도립미술관은 지난해 4월 21일 개관했다. 아직 2년이 안된 신생 미술관으로 외부에 존재감과 콘텐츠를 알려야 하는 일이 큰 숙제다. 미술관을 알리기 위해서는 전시된 작품이 좋아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동안 남종화의 대가인 의제 허백련과 남농 허건을 비롯해 ‘색의 화가’ 귤원 윤재우, 한국 대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광양이 낳은 사진가 이경모 등 전남지역의 작고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곳에 재조명했다. 내년에도 이런 사업을 준비 중이다.

또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개인 초대전도 준비 중인데 그동안 미술관을 다녀간 초대 작가는 강운, 박치호 등이 있으며 내년에는 송필용 작가 등을 초대할 예정이다.

그는 "요즘 미술관은 어떤 작품, 어떤 작가를 전시할 것인지 ‘경쟁 중’"이며 "글로벌한 시대를 맞아 경쟁력 있는 국제전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작가들이 해외 작가와 아티스트의 국내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알게 하고, 예술을 언어로 볼 때 동시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한다. 결국 지역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창작의 자극과 계기를 준다는 취지다.

이러한 평소 관점에 따라 이 관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회가 바로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조르주 루오전이다.

 

조르주 루오의 작품들 중 '미제레레'

◇ 20세기 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 전시회 개최

막상 대가의 전시를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작품을 보유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현지 미술관 직원들이 움직여야 하지만 코로나 재택근무로 인해 난관에 봉착했다.

설상가상으로 항공기 운송도 까다로워 전시를 미루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으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일정에 맞춰 전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관장은 “서울에 가지 않고 명화를 지역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명화와 지역의 관련을 찾게 됐다”며 “호남의 전남은 과거 양반들의 유배지이자 인본주의 저항의 정신을 담은 곳이고, 조르주 루오도 인간의 고귀함을 예술로 보여주고 작품의 화려한 색채는 남도의 성격과 보색처럼 잘 맞는 것 같아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조르주 루오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회의 부조리와 민중의 아픔을 표현한 작가다. 모든 인간은 존엄을 유지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개인 문제가 아닌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로 파악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아파하며 상처로 얼룩진 이들과,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한 천박한 기득권자들을 대비시키며 사회를 향한 경고 메시지를 예술작품에 녹여냈다.
이곳에서는 조르주 루오의 회상록과 여인들, 정물과 풍경, 그의 대표작인 ‘미제레레(Miserere), 예수그리스도의 수난, 서커스와 광대 등을 2023년 1월 29일까지 볼 수 있다.

아울러 연계전시로 조르주 루오의 영향을 받은 한국미술을 볼 수 있다. 전시 작가는 1940~60년대의 구본웅, 박영선, 이중섭, 한묵, 이봉상, 김종식, 이달주, 배동신, 강용운, 천병근, 이만익이 있다.

또 1970~90년대 작가로는 송혜수, 윤중식, 장리석, 황유엽, 박고석, 송영옥, 박석호, 박성환, 김재형, 서상환, 권순철, 손상기를 만날 수 있다. 

이 관장은 전남도립미술관의 발전 방향에 대해 “지역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출판과 세미나를 통해 전남 미술사를 정립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작가의 발굴은 결국 지역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전남의 고유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미래로 나가는 핵심”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미술관의 정체성으로 확립되고 전남지역민의 미술 문화 유산을 현대에서 미래적 유산으로 구현하는 장점이며 잠재성이기도 하다”며 “미술관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술관의 평가 기준은 소장품에 의해 결정된다”며 “외국의 유명한 미술관의 경우 세계적인 작품을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현재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이건희 컬렉션 작품인 김한기, 천경자, 오지호, 임직순 작가 등의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그림만 보는 미술관 아닌 생활·소통공간

이 관장은 전남도립미술관이 든든히 뿌리내리고 내실을 다져 명성있는 미술관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민의 사랑과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광양에 이런 미술관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신다”며 “지역민들께서는 우리 미술관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국제적 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사랑해 주시고 후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아직 2년이 채 안돼 부족한 점이 많지만 미술관의 성장 동력은 많은 시민들이 찾아 주시는 것이고, 광양지역에서 입소문이 나고 흥해야 또 다른 큰 전시도 광양으로 오려고 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조르주 루오전은 앞으로 50년은 우리 지역에 오기 힘든 전시인 만큼 모든 시민들이 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관장은 “미술관은 특별한 곳이 아닌 생활공간이어야 하고, 그림 보는 곳 만이 아닌 쉬어가는 공간으로 친구같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미술관에서도 지역민이 참여하는 각종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시민과 함께하고 문화의 플랫폼, 소통의 플랫폼으로 키워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술관에 왔을 때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그는 “미술관에 오시면 작품에 대한 설명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그림이나 미술품에서 느껴지는 본인의 감성에 충실하고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고 이해하면 좋고, 그런 방식으로 자주 미술관을 오다보면 자기만의 감상법이 생기게 된다”고 언급했다.

작품에 대해 알고자 할 경우 다양한 방법이 있음도 알려줬다. 우선 전시 설명서인 리플렛을 보고 설명과 작품을 맞춰보면 된다. 또 전시된 작품들은 대개 설명서가 붙어있어 이해가 가능하다. 작품 제목 등은 명제표로 나타나 있어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전시장의 배열은 아무렇게 하지 않고 연도별 또는 주제별로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속성과 계획성을 읽어낼 필요도 있다. 따라서 이미 설명된 것을 알고 작품을 접하게 되면 이해하는 데 힘들지 않다는 것이 이 관장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