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 낙극생비(樂極生悲) :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
고전칼럼 - 낙극생비(樂極生悲) :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
  • 광양뉴스
  • 승인 2022.12.0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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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정치는 뒷전이고 매일 주색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혼란한 틈을 타서 각국제후들이 침략해 왔고 제나라는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은어(隱語)를 잘 사용하고 해학적(諧謔的) 언변이 출중한 순우곤(淳于髡)이 초(楚)나라가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조(趙)나라에 군사 구원요청을 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이 소식이 순식간에 퍼져 초나라에까지 들어가자 초나라는 제나라 원정을 포기해야만 했다. 

초나라가 침공을 포기하자 위왕은 기분이 좋아 술자리를 마련하여 초나라에 군사를 요청하러 갔던  순우곤의 공을 치하했다. 연회에 참석한 순우곤에게 위왕이 물었다. “당신은 어느 정도 술을 마시면 취하는가?” 말하자면 주량(酒量)을 물어본 것이다. 순우곤은 풍부한 언변을 이용하여 매일 주색에 빠져 사는 위왕을 좋은 군주로 만들고 싶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순우곤은 이때다 싶어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기를 “저는 그때 상황에 따라 주량이 다릅니다. 한 잔만 마셔도 취할 때가 있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위왕은 순우곤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순우곤은 “오늘처럼 대왕이 하사하신 술을 마시는데 옆에 주령을 집행하는 법관이 있고, 그 뒤에 어사관도 있으면 술을 마시면서도 두려움이 생겨 한 잔만 마셔도 취합니다.”라고 답했다. 

위왕은 흥미롭기도 해서 “그럼 한말을 마셔야 취할 때는 언제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만약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면서도 즐겁게 대화를 하므로 한 말 까지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럼 한 섬을 마실 때는 언제인가?” “깊은 밤에 자리를 좁혀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에 촛불이 꺼진 뒤 엷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 은은한 향기에 한 섬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해서 실례를 범하게 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비극으로 변하기도(樂極生悲) 합니다. 세상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간접적으로 하는 이 간언을 들은 위왕은 귀가 펑 뚫리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매일 밤을 새워가며 벌이던 술자리를 이 말을 들으면서 부터 그만두고 순우곤을 중용해 정치에 전념하게 되었다. 

원래 주극생난(酒極生亂)과 낙극생비(樂極生悲)는 짝을 이루는 고사다.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슬픔이 극에 달한다.’는 것은 세상 일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현 시대에도 술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한다. 술은 대화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술이 적당할 때 이야기다. 

술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 사소하게 출발한 의견 충돌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요즘에는 미투(me-too)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이렇게 술이 도를 넘을 때는 독약이 되어 심각한 실수를 유발하게 된다. 지나친 과음 한번으로 실수하여 자신의 삶을 나락을 떨어뜨려 가정 파탄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묻지 마 폭행의 범인은 거의 술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성인군자(聖人君子)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만세사표(萬歲師表)로 동양의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孔子)도 무척 술을 좋아했다. 

주량은 확실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논어에 “술에 한정을 두지 않았으나 품격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다.”고 나온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고 함께 어울리되 ‘절제의 미덕’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사람이다.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서도 “꽃은 반만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만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 아름다운 멋이 있다,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만취하게 되면 추악한 경지에 이르니, 가득 찬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이나 부유함도 영원하지 못하고 돌고 돈다는 이야기나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닥을 전전하며 고생하는 사람도 앞으로 올라갈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무리(黨)들은 인기가 좀 있다 싶으면 영원히 집권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만방자(傲慢放恣)하여 타협보다는 밀어 붙이려하고, 숫자가 많으면 상대는 안중에도 없다. 이렇게 오만함이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다음에는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잘 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오만한 곳은 또 있다. 산업화 시대에 정경유착(政經癒着)으로 부를 거머쥔 사업가들은 이른바 이 시대에 재벌(財閥)이란 이름으로 오만하고 방만하게 기업운영을 하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부를 대물림하려 한다. 불법과 편법을 써가며 대물림을 하는데 3세 4세 경영인들은 고생을 하지 않고 대물림으로 받을 재산이므로 아까워하지 않고 흥청망청 쓰고 방자한 운영으로 공중 분해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부자가 3대 못 간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