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백운산 주제로 대하소설 쓰고 싶었던 '이균영'
[현장에서] 백운산 주제로 대하소설 쓰고 싶었던 '이균영'
  • 김양환 기자
  • 승인 2022.12.16 18:39
  • 호수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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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영 작가 문학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 9일 우산공원. 행사가 열리기 한 참 전부터 연신 눈물을 닦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

이균영 작가의 노모이시다. 97세 나이에도 행사장을 찾아온 것은 분명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곳은 ‘빙고등’이라고 불리던 아들의 어릴 적 놀이터였기에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의 발자국이 찾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균영문학비건립추진위원으로 문학비 건립에 일부 관여한 필자로선 문학비와 문학동산이 이곳에 조성된 것이 얼마나 잘한 결정인지 안도했다.

이곳은 이균영 작가의 생가(내우마을)가 지척에 있어 문학동산을 찾는 이는 작가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그가 살던 집에 찾아가 그와 함께 툇마루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이균영 작가 문학비 건립의 마중물은 기업인 황재우 어린이보육재단 이사장이었다. 어릴 적 선후배의 깊은 인연이 있었고, 작가의 재주를 너무 안타까워했던 마음 때문에 문학비를 손수 건립하고 싶어 했다.

애당초 문학비 건립 자리는 현 문화원 근처에 하자는 추진위의 결정이었으나, 문화도시사업단사업이 계획된 장소여서 우여곡절 끝에 우산공원에 세워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문학비와 함께 문학동산까지 만들어서 일석이조가 됐다.

이날 행사 자리에는 이균영을 사랑하고 아끼던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 작가와 정호승 시인이 함께 했다. 조정래 작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날의 기억을 말하면서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이균영은 서정적이면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처럼 대하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그 제목은 ‘백운산’이었다”며 “소설가이면서 역사학자인 이균영이 이중 경험에 대해 묻길래 걱정하지 마라 위대한 소설은 역사가 바탕이 돼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광양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백운산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면서 그는 천재작가였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그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정채봉 작가로부터 들었는데 5년 뒤 정채봉 마저 돌아가셨다면서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는데,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꺾어 하늘나라를 장식한 것 같다면서 슬퍼했다.

정은주 시인의 ‘아, 이균영’ 헌시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균영 작가 어머니, 동생, 아들 등 가족이 참석했고, 정인화 시장, 서영배 의장, 문학비 건립비용을 기부한 황재우 이사장, 김종호 문학비건립추진위원장, 인척관계이면서 친구 같은 김종대 전 도의원, 이성웅 전시장, 문인협회, 예술인, 내우마을 주민,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다.

이균영 작가는 1951년 광양읍 우산리에서 태어나 동초, 광양중,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이다. 1977년 ‘바람과 도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어두운기억의 저편’으로 최연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천재 작가이다.

하지만 19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45세 젊은 나이에 타계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원고로 펴낸 장편소설 〈빙곡〉은 유작이 됐다. 애향심이 깊어 1982년 동덕여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광양군지 편찬책임상임위원으로 군지편찬에 깊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