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해당 책에는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제동 장치가 망가진 열차가 운행 중에 있는데 선로위에 5명의 사람이 있다.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죽게 되고 선로를 바꾸려고 하니 1명의 사람이 선로에 서있다. 이때 과연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희생되어야 할 사람이 본인의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라면 어떨까? 과연 쉽게 선로를 바꿀 수 있는가?
윤리학에서 단골 소재로 삼는 이 ‘트롤리 딜레마’가 광양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일 광양시는 읍 사무소와 시청 본청에 위치한 차량등록소를 통합한다고 밝혔다. 시는 근무인원부족과 행정편의, 그리고 광양시 차량등록 중 2.2%만이 읍에서 등록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통합을 이야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읍권 주민들은 즉시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이미 결정된 사항을 되돌리긴 어려워 보인다.
광양시는 전국서 유일하게 차량등록소가 2개다. 이원화된 도심지를 연결하려는 노력보다 무분별한 증설을 택해온 결과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공직자의 숫자를 늘릴수도 없고 인구는 감소세 접어들며 선택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시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택한다. 중마권은 읍권에 비해 인구도 많고 평균 연령도 젊다. 2.2%를 위해 직원을 한명 더 배치하는 것도 어려울 테고 기존 직원들이 겪고 있는 근무상의 어려움도 이해가 된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난 읍권 발전협의회장단은 ‘이해는 된다’면서도 ‘서운하다’고 말한다. 95년 통합 이후 광양읍은 발전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중마동은 주요시설이 들어서며 도시가 커지기 시작했다. 광양읍은 시의 산업화를 위해, 개발과 발전을 위해, 이젠 다수가 되어버린 중마권 주민들을 위해 하나둘씩 행정서비스를 뺏겨왔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트롤리가 피하거나 돌아갈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결국 시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제껏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어쩔수 없다”며 읍의 행정서비스 대부분을 중마권으로 옮겨가는 선택을 했던 시가 통합사업소 건립 전 2청사 차량등록을 폐지하는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광양읍민들은 언제까지 중마동과 순천시를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해야 하는 걸까. 광양시는 선로를 바꾸며 희생당한 인부 1명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는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