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위기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기회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볼 때 서두른다는 것은 위기를 부를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정해진 순서에 입각하여 신속 정확하게 행하면 유리함이 더 많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의 속도가 빨라지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위기가 발생될 여지가 더 많다.
무엇보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고 여유 있게 주변 상황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늘 심호흡을 하면서 한 박자 쉬어 가는 타임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자. 주어진 환경은 바꿀수 없지만 자기의 생각과 행동의 속도는 자기가 조절할 수 있다.
도덕경’에 고요한 것이 조급한 것을 이기고 차가운 것이 뜨거운 것을 이기며,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를 바로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고요하게 침묵하는 것이 실익이 더 크다.
물론 서둘러야 하는 경우에는 서두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여유로운 태도로 고요하게 서두르는 것이 좋다. 조급함은 고요함을 이길 수 없다. 높은 산이 묵묵히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는 것은 고요하기 때문이다.
도덕경’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움직이는 것이라는 모순된 말이 있다. 갈등을 조급하게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열정과 냉정의 경계, 고요함과 서두름의 경계, 정(靜)과 동(動)의 경계, 음(陰)과 양(陽)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위기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적당히 서두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 적정하게 행하는 것은 경계에 서는 것이고 중용(中庸)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 중용은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조급히 이루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탐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 조급히 이루려고 하면 오히려 닿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급하면 오히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일부러 여유를 가지려고 애써야 한다. 대부분 서두르는 행동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센 물살에 휩쓸려가듯이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휩쓸려 조급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평소에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입각하여 제 3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관조해 볼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두르게 되는 것은 심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이다. 즉 과로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사노라면 심신이 피곤해서 무작정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쉬자. 휴식 없는 생활은 위기를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아울러 기나긴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살 필요는 없다. 없는 여유도 만들어서 쉴 수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도 연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멀리 갈 수 없다. 또, 브레이크 성능이 좋지 않으면 고속으로 주행할 수 없다. 브레이크 성능이 좋아야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서두름의 두 개의 얼굴 중 기회를 부르는 서두름으로 살 요량이면 이 칼럼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즉시 휴식 모드에 돌입하자.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